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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한 마리 벌레라 할지라도

by 달리아

올해 6학년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다. 음악 시간에는 매 수업 초반에 번호대로 돌아가며 자신의 인생곡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지금껏 들었던 음악 중, 가장 좋았던 곡을, 가장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노래를 사연과 함께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다. 지난주엔 맑은 얼굴로 늘 수업에 집중하던 조용한 남학생이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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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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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래 제목을 듣고선, 내가 자랄 때 듣던 개똥벌레인 줄 알았는데(아무리 우겨봐도~ 다 아시죠?^^), 가사와 감성은 비슷하지만 요즘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곡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함께 감상하고 나서,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라는 음악을 슈퍼밴드 버전으로 함께 들었다.

https://youtu.be/JgcawrRr074?si=-0_K09MZfTsgYSES

어린 시절 우리는 자신이 별처럼 빛나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고도 고유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시기를 거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음을, 세상엔 나보다 빛나고 멋진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한 경쟁과 경주 속에서 하늘에서 땅으로 단박에 추락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한순간 내동댕이 쳐진 바닥에서 나는 나 자신이 하찮고 혐오스러운 벌레라고 여겼다. 징그럽다는 이유로 함부로 밟고, 내쳐지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기며 숨은 듯, 죽은 듯 지내던 때가 있었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죄책감과 수치심의 골짜기는 더 깊은 바닥으로 나를 끌어내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미처 내보내지 못하고 억누르며 쌓아두었던 감정의 오물을 뒤집어쓴 체, 나는 늪에 빠진 동물처럼 꼼짝없이 숨을 죽이며 세상에 없는 듯 살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보이지 않는 지하 감옥 같은 시간들을 보내며, 언젠가 내가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 기적처럼 빛이 나타났을 때, 온몸으로 그 빛을 쫓아 살아왔다. 그 빛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다.

나는 그 사랑의 힘을 실감하며, 나를 살린 사랑을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겪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살려온 말과 몸짓으로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별 보다 빛나는 눈빛으로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며 피어났다.

그 모습에 작년 과학 수업 때 열었던 백일장에서 한 아이가 쓴 시가 떠올랐다. 책 245쪽에도 수록된 라희의 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빛을 내는 것
우린 그것을 별이라고 부른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비록 내가 한 마리의 벌레처럼 작디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나만의 빛을 내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늘의 별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지난 삶에서 겪었던, 너무나 아프고, 지독하게 외로웠기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순간들이 누군가를 품고 꽃피울 수 있는 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썩어들어가 죽는 것만 같은 고통을 넘어설 때 비로소 찾아오는 변형과 거듭남의 기적으로 비옥한 땅이 되고, 열매가 되는 삶이기를, 오늘도 하늘에 구하며, 땅 위에서 기도한다.

《삶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뒷표지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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