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발령받은 지 2년째 되던 해에, 내가 있던 교과실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겨울 무렵 추운 날씨임에도 얇은 옷을 입고 맨발에 신발을 신고 계셨던 그 분은 다짜고짜 교과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교무실에서 얼마 뒤, 교감선생님께서 뛰어오셔서 그분을 모시고 가셨다. 알고 봤더니, 그분은 근처 학교에서 퇴임하셨던 교장선생님이셨는데 교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당신이 교사라고 생각하셔서 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다음 해에 나는 교사를 그만두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여러 행정적인 업무들이나 관습적인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기에,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고, 한 번뿐인 삶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선생님은 다시 지구별 학교의 학생이 되러 가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누구보다 그런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다. 치과의사가 꿈이었는데, 선생님 덕에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됐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속했던 틀에서 나오는 경험을 통해 나는 직업과 역할이 마치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여러 새로운 일들을 시도했었다. 그 중 하나가, 내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졌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 지역의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참여한 것이었다. KBS에서 이명세 감독님을 주인공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콘셉트로 하는 다큐였다. 나는 지역 전문 코디라는 역할로, 그 지역의 명상센터나 명소, 맛집 등을 안내했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라 잊고 살았는데, 어제 친한 언니가 내가 등장한 부분을 캡처해서 보내주어 유튜브에 영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여러 일들과 상황들을 조율하고 맞추느라 정신도 없고, 많이 힘들기도 했었는데, 화면 속에서의 나는 웃고 있었다. 몇 년 사이에 많이 변한 다람살라의 분위기와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에 여러 번 울기도 하고, 다녀와서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할 정도로 소진되었는데, 다시 보니,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과 풍경들에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나를 찾는 겨울 여행 다람살라로 가다"(KBS 130123 방송)유튜브 화면 캡처
그렇게 지난날의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고 있자니, 문득, '삶이 연극이고, 영화'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법칙이 모두의 삶 속에 계속 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기에, 내가 맡은 역할이 나라고 붙들며 매몰되지 않되,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적 체험들과 감정과 마음들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명상센터에서 만났던 친구인 브라질 출신의 마우리어의 인터뷰에 같은 마음이 담겨있어 올려본다.
"나를 찾는 겨울 여행, 다람살라로 가다" 유튜브 화면 캡처
새롭게 시작한 한 주, 월요일 아침, 주말 내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쌓였던 피로와 밀린 집안일들과 흐린 날씨에 몸과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맡은 일과 역할들은 그저 잠시 맡겨진 것일 뿐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한층 가볍고 밝아진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생의 순간, 순간들 속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살겠노라고 나지막이 다짐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