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렸던 책들을 반납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자마자 눈앞의 태블릿이 켜지며 광고가 나왔다. 화면을 끄려고 해도 잘 꺼지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께서도 회사에서 갑자기 일괄적으로 설치하라고 한 것이라며 난감해하셨다. 택시를 내리는데, 기사님께서 평가를 잘 부탁드린다는 얘기를 하셨다. 무언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빌린 책들이 비접촉, 고립 사회에 대한 책들이었다.
위의 책들 중, <고립의 시대>를 쓴 노리나 허츠는 우리 인간이 진화를 하며, 생존을 위해 연결된 상태가 유리했기에, 혼자 있을 때 외롭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며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나는 비접촉의 제도화가 진정으로 우려스럽다. 일상적인 거래에서 인간을 쫓아내면 쫓아낼수록 우리는 필연적으로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계산원과의 담소나 종업원과의 정감 어린 농담이 딱딱한 도시 생활에 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점원의 친근한 표정이나 물구나무서기에 처음 성공한 우리에게 요가 강사가 지어주는 격려의 미소를 볼 수 없다면, 모든 미세 상호작용의 이점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고립감과 단절감이 필연적으로 커지지 않을까
-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中
실제로 이미 우리 일상의 수많은 부분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지인의 SNS에는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어주는 로봇이 보이고, 최근 오랜만에 간 마트에서 주차장 요금을 받던 분들과 계산 직원분들이 모두 없어지고 그 자리에 기계가 들어선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며 수많은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얻는다는 효율성과 이익이 최고의 가치가 되다 보면, 인간이 지닌 다른 소중한 가치들은 밀려날 것이고,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의 수많은 실직과 고립은 또 다른 엄청난 사회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마틴 부버가 얘기한 서로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맺는 '나'와 '너'의 관계는 사라지고 있으며,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맺는 '나'와 '그것'의 관계들이 주는 허무함은 여러 정신병들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 내가 어릴 때는 듣기 힘들었던 가족, 이웃들 간의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뉴스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것에도 분명 이처럼 삭막하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밀어내는 사회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을 막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는 가장 가까운 것부터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 이웃 간의 경험을 통해 다시 느꼈다.
지난 주말 아침에 초인종이 울려 나가 보니 앞집에서 과일을 나눠주셨다. 나도 집에 있는 먹거리들을 챙기고, 글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생명다양성 재단에서 만든 엽서에 글을 쓰는데, 엽서 앞의 멸종 위기 동물들 그림처럼, 사라져 가는 이런 마음들을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과 엽서를 전해드리며 앞집 아이의 이름을 묻고 잊지 않게 여러 번 되뇌었다. 가득 찬 냉장고처럼 마음이 차올랐다.
빠른 변화들 속에서, 혼란스럽고 분열된 사회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위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누며, 서로를 채워가는 것은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과 서로 연결되는 것은 세상의 찢어진 그물을 다시 잇는 일이라 느낀다.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이 빛을, 이 온기를 잘 키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