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쓴다. 이렇게 습관을 들이고 100일이 지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훨씬 가볍고 건강해진 느낌이다. 걷기가 몸에 정체되고 쌓여있던 것들을 소화시키고 흐르게 해 준다면, 글쓰기는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의미를 찾고, 여러 경험들을 소화시키게 도와준다. 아무리 좋은 맛집이나 여행지도 두 번 이상 잘 가지 않고 늘 새로운 장소를 찾아 헤맸던 내게, 같은 길을 계속 걷는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엊그제 비가 내려서인지, 매일 산책하는 공원에는 오늘따라 더 많은 낙엽들이 푹신한 쿠션처럼 깔려있었다. 맑은 햇살 아래 단풍 빛깔이 참 아름다웠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확장시키고, 연결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도심 속 공원임에도, 마치 깊은 산속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매일 걷던 길이 또 새롭게 보여 감탄을 하며 걷다가, 문득, 대학생 때 읽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 수필집에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반복의 깊어짐'이라는 표현이 나왔던 구절이었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 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 깊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깊어짐 없는 범속한 되풀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듣기 좋은 노래'가 되고 말 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 법정, <무소유>, 종점에서 조명을 中
위의 글에 나를 비추며 내 삶이 듣기 좋은 노래처럼 반복되는 것인지, 여러 화성과 대위법 안에서 깊어지는 음악처럼 흐르고 있는지 돌아보며 걷게 되었다. 적어도, 20여 년의 시간 동안 품고 있던 글의 뜻이 내 안에 더 깊이 닿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내게는 글이 곧 길이었고, 나는 내내 글이 낸 길을 따라 삶을 걸어왔다.
그렇게 사색을 이어가며, 걷다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사시사철의 변화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서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해 점점 더 깊이 뿌리내리고, 그럼으로써 매해 더 많은 가지들을 뻗고, 더 많은 잎들과 열매들을 맺어가고, 모든 맺은 것들을 다시 땅으로 보내는 나무들은 오래전부터 나의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헤르만 헷세가 그랬듯 나는 '나무들의 깊고 느리고 고요한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은 산책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키가 큰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낙엽비를 내려주었는데, 마치 그것이 내게 전해주는 선물처럼 느껴져 두 팔을 벌려 가슴을 열고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며 웃었다.
걷는 내내 '반복'이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어서 그런지, 집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 전 6살 된 딸이 외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다 이렇게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할머니, 우리 엄마를 참 잘 낳았어.
그래서 내가 여기 있잖아.
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엄마는 나를 낳고,
이런 게 반복되네."
실로, 임신 출산 과정에서 더욱 생생하게 닿았던 생명의 경이로운 순환 과정이, 딸아이의 말을 통해 한 번 더 놀라움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더 이상 지겹거나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음을 자각한다. 생의 마지막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순간은 바로 이처럼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새기며 위의 법정스님의 글처럼 '종점에서 조명을' 밝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