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피아노

구스타프 랑게의 꽃노래를 연주하던, 일요일

by 고수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경쾌하다.

타닥타닥 소리가 기분 좋다.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7년동안 피아노를 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처음부터 내가 피아노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손은 작고 차갑고 축축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이렇게 하면 손가락이 길어질 거야" 라면서, 피아노 건반 아래에 내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마디 마디를 늘려 찢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손은 자라지 않았다. 일곱 살이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 손가락은 도에서 도까지 닿지 않는다. 어린애처럼 조그마한 손은 정확한 음을 누르기 힘들었다. 게다가 내 손은 늘 땀이 흥건해서 누르는 음마다 툭하면 미끄러졌다. 거기다 최악으로 나는 배우는 속도까지 아주 느렸다. 그런데도 나는 꽤 오래 피아노를 배웠다.


처음엔 체르니를 만나고 다음엔 모차르트를 만나고 그다음엔 베토벤을 만나고 그리고 슈베르트를 만났다. 꽤 오랜 시간을 그들과 함께했지만 나는 흔한 콩쿠르에 한 번 참가한 적이 없었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아한 몸짓으로 피아노를 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늘지 않는 게 피아노였다. 피아노에서 나는 만년 열등생이었다.


아홉 살 때, 집에 갔는데 피아노가 있었다.

중고가 아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외양의 새 피아노였다. 엄마 아빠는 없는 형편에도 내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싶었었나 보다. 어서 의자에 앉아서 한 번 쳐보라고 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퍽퍽한 건반은 처음이었다. 내 마음도 괜히 퍽퍽했다. 나는 내가 칠 수 있는 제일 어려운 곡을 연주다. 서툰 연주였는데도 엄마 아빠는 행복해했다. 두 손을 모으고 아이처럼 기뻐했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열한 살 때, 내 생애 처음으로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쳤다.

독일 작곡가 구스타프 랑게의 '꽃노래(Blumenlied)'였다. 바장조의 꽃노래는 렌토 모데라토, 약간 느리거나 보통 빠르게. 에스프레시보, 표정을 풍부하게. 연주하기에 보통 섬세한 곡이 아니었다. 지금 다시 악보를 봐도 이걸 어떻게 연주했나 싶을 정도로 내겐 어려운 곡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꽃노래를 연습했다. 퍽퍽한 우리 집 피아노 건반을 눌러가며 매일 그 곡만 쳤다. 나는 꽃노래가 좋았다. 피아노 선생님께 꼭 그 곡을 치겠다며 고집을 부려서 얻은 곡이었다. 엄마도 꽃노래를 좋아했다. 계절과 상관없이 내가 꽃노래를 연주하던 우리 집은 항상 봄이었다. 순정만화에서처럼 꽃송이들이 퐁퐁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대망의 연주회 날, 엄마는 어디서 드레스를 빌려와선 내게 입히고, 곱게 머리를 묶어줬다. 화장도 해줬다. 연분홍색 립스틱을 발라주고는 입술을 빰빰 해보라고 했다. 빰빰. 드디어 나는 무대에 올랐다.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손등 위에 내려앉은 조명이 따뜻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꽃밭 가운데에는 우리 가족이 웃으며 서 있었다. 나는 떨지도 않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행복했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열세 살이 되고 나는 피아노를 그만뒀다.

그 후에도 피아노는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짙은 나무색 표면에 로코코 양식의 부드러운 곡선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 고전적인 모양새 때문인지,

피아노는 나이가 많은 커다란 나무 같았다. 우리 집 한편에 뿌리를 내리고
가끔 ‘도도 레레’ 노래를 불렀다.

피아노는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따뜻한 빛을 머금었고, 살랑이는 바람을 맞이했다. 엄마는 행여나 먼지가 쌓일까 매일 마른 수건으로 피아노를 닦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이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팔자고 했다. 중고라도 돈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엄마는 팔지 않았다.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서, 피아노는 자주 다른 집에 옮겨 다녔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친척 집 지하창고에 맡겨두었는데 비가 와서 잠겼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다.


어른이 되어 가끔 피아노를 만나면 건반을 눌러본다. 멋지게 한 곡 쳐보고 싶지만, 그 많은 곡 중에 한 곡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젓가락 행진곡이나 두드리다 슬쩍 일어선다. 어디 가서 나 피아노 쳤었어, 라고는 말도 못한다. 7년이나 배웠으면서 제대로 칠 줄 아는 곡이 하나도 없다는 게 머쓱해진다.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때마다 피아노를 치던 열한 살의 내가 겹쳐진다. 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없었지만, 한때는 기적처럼 우리 집을 봄으로 만들었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연주였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피아 대신, 타닥타닥 컴퓨터 자판을 오래 칠 생각이다.

렌토 모데라토,
약간 느리거나 보통 빠르게.
에스프레시보, 표정을 풍부하게.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적당하고 온건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그렇게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조금의 재능이 있다면 글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구스타프 랑게의 꽃노래를 연주하던 날의 나처럼.

얼마 전 <헤세와 그림들 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에 다녀왔다. 헤세의 그림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앞에서 난 랑게의 '꽃노래'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행복했다.

당신도 꽃노래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구스타프 랑게 <꽃노래, Blumenlied(Flower Song) op.39>, 출처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hnRD-5R3P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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