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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16. 2015

목요일의 저녁

목요일 일곱 시, 저마다의 저녁

일곱 시. 길어진 해가 천천히 저녁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나른한 졸음과 함께 전철에서 내렸다. 플랫폼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황금빛을 머금고 있었다. 천장의 철골 구조물과 , 다양한 선의 그림자가 한데 뒤엉켜 불규칙한 패턴을 만들어 냈다. 저 멀리 소실부터 뻗어나 레일 정교한 원근법을 그리며  패턴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낯설고도 완벽한 풍경. 나는 훌쩍 시간을 달려서 '언젠가 어떤 미래'에 서 있는 사람처럼 이상하고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개찰구를 나오자 후끈한 공기가 달라붙었다. 자동 굴러가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상점의 노랫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연약한 매미 소리. 한 톤 낮아진 온갖 소리들이 밑바닥에 깔려 웅성거렸다. 세상이 숨 쉬는 소리가 있다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었다. 각각의 목소리로 저마다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좋다. 미소가 번졌다.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보았다. 


자전거가 늘어선 패스트푸드점 앞에 한 무리의 소녀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소녀들은 하얀 양말 자국이 선명한 맨발에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무심한 양말 자국 아래로 드러난 뽀얀 복사뼈를 얇은 구두    싸고 있었다. 가까이 만지고 싶을 정도로 연약했다.


찻길 옆에서 게장과 젓갈을 팔던 여자는 더위에 지쳤는지 좌판대에 머리를 파묻고 엎드려 있었다. 미동도 없는 그녀의 곁에서 낡은 선풍기가 탈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사거리의 허름한 약국 앞 꾀죄죄한 차림의 남자가 바닥에 그냥 털썩 앉아서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걸친 채 연신 부채질을 하던 노인이 못 미더운 표정으로 를 쳐다봤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젊은 부부는 걸음걸이가 닮았다. 부부의 슬리퍼가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지나갔. 


나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간판이 그득한 골목 사이를 걸어갔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마주친 사람들, 그들 저마다의 저녁이 특별하게 느껴졌어느새 저녁은 채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여름의 저녁은 그 어떤 계절보다도
찬란하고 벅차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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