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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07. 2018

수요일의 따피씨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것

나를 바보라고 부르던 바보가 있었다. 중국 유학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우리는 우연히 첫 수업 때 짝꿍이 되었는데, 첫 만남에서 기껏 나눈 대화가 '바보'라는 단어를 일본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어떻게 부르느냐였다. 우린 바보들이 분명했다.


초급반 교실에서 한동안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그 애가 '빠가'라고 부르면 나는 '바보'라고 불렀다. 그 애가 재빨리 '뻔딴'하고 받아쳤고, 그럼 나는 마땅히 부를 바보 말이 없었다. 입을 오물오물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 애가 히죽 웃으면서 "정말 바보잖아!" 소리쳤다. 속이 부글부글. 근데 밉지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3개 국어 바보는 그냥 내 별명이 되었다. 대신 녀석에겐 기가 막힌 별명이 생겼다.


따피씨에. 大皮鞋(dàpíxié)


중국어로 커다란 가죽신발이란 뜻이었다. 녀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쨍쨍하나 늘 커다란 가죽 워커를 신고 다녔다. 제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고서 느긋한 듯 사뿐사뿐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까지 더해, 언제 어디서든 뚜벅뚜벅 발소리만으로 녀석이란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따피씨에는 짓궂은 버전의 찰리 브라운을 닮았다. 키 작고 통통한 몸에 동글동글한 얼굴에는 여드름 자국이 주근깨처럼 박혀있었다. 웃으면 작은 눈이 사라졌고 개구쟁이처럼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녀석은 제 머리통보다 훨씬 큰 야구 모자를 얹어 쓰고 다니거나, 머지않아 묶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리고 다녔다. 결국 단발머리가 되었을 때, 나는 녀석의 머리를 가닥가닥 땋아주었다. 한동안 따피씨에는 땋은 머리 위에 커다란 야구 모자를 쓰고 둠칫둠칫 걸어 다녔다. 세상에. 너무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따피씨에는 종종 수업을 빠지고 놀러 다녔다. 오히려 바보라 불리던 내가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거기엔 슬픈 사정이 있었다. 스물셋의 나. 수능을 망치고 점수에 맞춰 진학한 중국어과에서 중국어에 성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서 이제 어떡하나 절망했던, 어려운 중국어는 미뤄두고 동아리 활동에만 열중하다가 졸업을 앞두고서야 훌쩍 도피 유학 온, 어느 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따피씨에도 별생각 없이 열심히 놀다가 교환학생으로 얼떨결에 유학 온 대학생이긴 했다. 다만 녀석은 중국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특유의 베짱이 기질과 방랑벽으로 동네 시장이며 공원, 목욕탕, 볼링장, 양꼬치집을 뚜벅뚜벅 혼자서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한 번은 왜 수업에 빠졌냐고 물었더니 아침밥 먹으러 갔다가 식당 아줌마랑 수다를 떨다가 깜빡했다고 했다. 정말이지 특이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을 때, 따피씨에는 중국어가 훌쩍 늘어있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건 내 쪽이었다. 수업은 빠져도 점심시간에는 꼭 나타나 와구와구 밥을 먹고 있는 따피씨에를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 바보가 아니라 천재일지도 몰라.


우리는 성격도 성향도 생활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나는 나와 다른 따피씨에가 좋았던 것 같다.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장난스러운 행동이 좋았다. 내일 말고 오늘! 열심히 말고 재밌게! 하고 싶은 것만 할 것! 그런 식의 태평하고 뻔뻔한 태도가 부러웠다. 특히나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데도 따뜻한 말투가 좋았다. 그게 몇 번은 정말 고마울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 하루는 독서실에서 나오다가 공 차고 있는 따피씨에를 마주쳤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여기 있는 동안 HSK를 따야 해."

"왜?"

"돌아가면 취업해야 하니까."

"HSK 공부가 그렇게 재밌어?"

"음... 모르겠어."


녀석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정말 바보잖아! 하기 싫은 건 하지 마."

"하기 싫은 건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잘 모르겠어."


따피씨에는 빠가, 바보, 뻔딴 콤보를 대차게 날렸다. 바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없었다. 그냥 불안하고 잘 모르겠어서 남들만치 따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정말 바보 같아. 녀석이 뻥 하고 찬 공이 저 멀리 날아갔다.



다른 하루는 기숙사 복도에서 불쌍하게 울고 있다가 컵라면을 먹으러 온 따피씨에를 만났다. 왜 우냐는 물음에 연애 비슷한 게 힘들다고 했다.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외국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그래도 몰래 만나자고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나는 상처받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그 남자가 좋아?"

"잘 모르겠어. 근데 걔는 내가 너무 좋대."

"너는? 네 마음은?"

"음... 모르겠어."


녀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젓가락을 갈랐다.  


"정말 바보잖아. 하기 싫은 건 하지 마."

"하기 싫은 건 아닌데..."


됐고. 라면이나 먹자. 나는 녀석을 따라 눈물 쓱쓱 닦고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걸까. 어째서 내 마음조차 잘 모르겠지. 자책하다가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깜빡 잊어버렸다.


따피씨에의 말이 맞았다. 하기 싫은 건 하지 말아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중국어도 잊어버렸다. 내가 중국어를 배우긴 했었나. 중국어 전공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깨끗이 잊어버렸다. 중국 유학은 괜히 다녀온 셈이 됐다. 왜 그리 미련하게 공부했는지, 뭘 그리 멍청하게 연애했는지도 다 잊어버려서 그때를 떠올리면 후회만 남았다. 돈도 젊음도 시간도 너무 아까워서. 스물셋의 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지'하고 그 시절을 송두리째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따피씨에와도 흐지부지 헤어졌다. 내가 중국어를 잊어버린 탓이었다. 종종 메일을 주고 받았지만 나눌 이야기가 사라졌다. 녀석의 메일을 번역기로 돌려 읽다가 결국엔 바보. 바보. 서로만 부르다 연락이 끊겼다. 내 탓이었다. 나중에 SNS에서 따피씨에를 찾으려다 깜짝 놀랐다. 나는 녀석의 풀네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깨닫게 됐다. 녀석은 나에게 무척 중요한 친구였단 걸.  



그 시절, 유독 선명한 순간들이 있었다. 따피씨에와 교과서에 바보 그림을 잔뜩 그리며 키득거리던 수업시간.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녀석의 머리카락을 땋아주던 어느 오후. 구멍가게에서 1원짜리 아이스크림을 골라 까먹으며 올라가던 언덕길. 중국인들이 가득한 허름한 식당에서 엄청나게 싸고 맛있는 밥을 먹었던 토요일. 이어폰을 나눠 들으며 서로의 언어로 번역해주던 노래들. 학교 앞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구름을 가만히 쳐다보던 여름 저녁. 꼬치를 산만큼 쌓으며 먹었던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 알딸딸하게 취해서 웃고 뛰어다니며 들이마시던 시원한 밤공기. 그런 순간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것들이었다. 소소하지만 즐겁고 기분 좋은 것들. 녀석이 나눠준 것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행복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나는 뚜벅뚜벅 걷던 따피씨에를 생각한다. 제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선 정작 제 맘에 맞지 않는 일은 별로라고 피해 다니던 이상한 친구. 뭐든지 제멋대로였던 녀석. 그래서 녀석은 매일매일 행복했던 것 같다. 따피씨에가 그랬다. 하기 싫은 건 하지 말라고. 행복은 견뎌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행복은 오늘에 순간에 잠시 반짝이는 조각 같은 거였다. 일단 잡아야 했다. 즐겨야 했다. 기뻐해야 했다. 아주 마음껏.


얼마 전에는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나갔다가 달그락거리는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내내 눈치를 살폈다. 잔뜩 움츠리고 조심조심 걷다가 문득 따피씨에가 떠올랐다. 걘 이런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녔는지 몰라. 정말 바보잖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피씨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사히 졸업은 했을까. 취업은, 결혼은 했을까. 여전히 커다란 가죽 신발을 신고 다닐까. 어쨌든 녀석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어쨌든 나도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발걸음을 사뿐히 옮겼다. 그리고 건물 밖을 나섰을 때,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빛을 만났다. 뺨을 비비는 겨울바람이 반가웠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즐겁고 싶다. 지금, 행복하고 싶다. 커다란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걸어 다니던 따피씨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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