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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22. 2018

네 상처 감싸주지 못해서 미안해

목요일의 사과

열 살 무렵 자주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반도 아니고 노는 무리도 아니었지만 매일 등굣길을 함께한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집은 101동, 그 애 집은 103동. 아침에 일어나 씻고 옷 입고 밥 먹고 가방 메고 나오는 시간이 비슷했던 모양인지 우리는 학교 가는 길에 자주 마주쳤다.


어린이 걸음으로 삼십 분 정도 걸렸던 등굣길. 철길을 건너고 오솔길을 가로질러 놀이터를 지나고 대로변을 따라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매일 아침의 여정.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얼굴이 익었고 그 애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 후로 우리는 같이 학교에 갔다.


새학기가 되면 항상 반에서 똑같은 이름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그 애 말처럼. 그 애 이름은 아주 흔했다. 그렇게나 흔한 이름인데도 내가 유독 그 이름을 선명히 기억하는 건, 내 기억 속에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다. 곰돌이처럼 커다란 덩치에 까맣게 탄 빵빵한 얼굴로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 아침마다 달려와 내게 인사를 건넬 때면, 새빨간 두 볼이 호빵맨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안녕!” 그 커다란 몸에서 나온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맑고 상냥한 하이톤의 목소리. 함께 걸어가는 동안 그 애는 작은 새처럼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우리는 아침마다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자주 마주쳐서 같이 걸어갈 뿐이었다. 먼저 나온 사람이 앞서 걷고 있으면, 늦게 나온 사람이 다다다 뛰어와서 안녕, 인사하는 식이었다. 교실 앞에서 헤어지면 다음 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다시 만나고. 그런 자연스러운 사이라서, 그 애가 사라졌을 때도 나는 금방 눈치채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 애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그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 애가 병원에서 누워 지내는 동안, 나는 다른 등굣길 친구들이 생겼다. 그 애와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마주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학교에 갔다.


자연스러운 사이라는 게, 친한 것도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사이라서. 우리는 반도 달랐고 같이 놀던 친구도 아니라서. 나는 그 애 소식을 들었어도 병문안조차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애의 빈자리도 그땐 아무렇지 않았다. 어려서 몰랐던 걸까. 어려서 잔인했던 걸까. 나는 아직도 그때 나의 무심함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도무지 만져지지 않는 다른 사람 같아서 무섭기도 하다.


다시 그 애를 만난 건, 새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였다. 나는 4학년이 되었고 그 애는 다시 3학년이 되었다. 어느 아침, 학교 가는 길에서 그 애를 봤다. 앞서 걷고 있던 그 애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늘 우리가 그랬던 대로라면, 나는 다다다 뛰어가서 안녕, 하고 인사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천천히 걷는 그 애의 등을 멀찍이서 따라 걷다가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날뿐이었다. 그 애는 다시 등굣길에서 사라졌다. 부모님이 데려다주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 후로 몇 번, 학교에서 그 애를 마주쳤다. 쭈뼛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어색해지고 데면데면해지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됐다. 그 애는 이제 좀처럼 웃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약속을 정하고 만났다면, 학교 가는 길에 팔짱을 끼고 걸었다면,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교실을 들락거렸다면, 집에 가는 길에도 함께 걸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친한 친구였을까. 나는 다시 돌아온 그 애 옆에서 같이 걸을 수 있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친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꿈에서 그 애를 만났다. 절뚝이며 걸어가는 그 애 뒤를 오래 따라만 걷다가 나는 깨어났다. 전학을 가고 중학생이 되고 스무 살이 되어서도 종종 꿈속에서 그 애를 만났다.



스물 후반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낯선 이름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 안녕? 잘 지냈어? 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하고 염치없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수리야, 네 상처 감싸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메시지를 읽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누구였더라. 내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를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먹먹했다. 나의 어떤 상처를 보았기에 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너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있는 걸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우리가 어떤 시간을 같이 보냈던 걸까. 모니터에 반짝이는 낯선 이름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옛날 그 애를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어렸을 때, 너그럽지 못하고 서툴렀을 때. 그때, 타인의 어떤 상처는 너무나 크고 짙어서, 가만히 들어주는 것조차 버겁고 두려웠다. 그리 대단한 게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안녕’ 다정한 인사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다 놓쳐버린 마음은, 긴긴 시간 내 안에 그늘로 남았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뒤늦은 후회로, 그리하여 또 다른 상처로. 상처를 받았던 너도, 상처를 감싸주지 못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든 나도, 모두가 상처투성이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어렵게 용기를 내준 친구가 고마웠다. 나는 답신을 보냈다.


- 괜찮아. 이제 그만 미안해해도 돼.


내가 누군가를 용서해도 될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여전히 열 살로 남아있는 그 애 이름을 가만히 불러봤다. 이제라도 너를 찾고 싶은데, 너무도 많은 같은 이름 속에 숨어 사는 너를 찾을 방법이 없다.


안녕. 잘 지내니.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사실 나는 두려웠어. 무서웠어.  

네 상처 감싸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애와 같이 걸어가며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너도 나를 용서해줄까. 나를 기억이나 할까. 아니면 전부 까맣게 잊고 잘 살고 있을까. 오랜 기억 속의 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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