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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15. 2018

이 무늬가 너를 지켜줄 거야

화요일의 작은 나무

어느 타투이스트의 SNS에서 사진 한 장을 봤다. 할머니 팔에 돌고래 세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꽃송이들과 뒤엉켜 어깻죽지를 향해 헤엄치는 돌고래들.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 같기도 꽃 속에 파묻힌 벌거숭이 아이들 같기도 했다. 갓 새긴 타투의 까만 선을 따라 살갗은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할머니의 벗은 몸은 아름다웠다. 사진 아래에는 '우리 할머니와 나의 타투'라고 적혀 있었다. 타투이스트인 손녀가 할머니에게 직접 새겨준 그림이었다.


나는 평소 타투한 사람을 발견하면 힐끔거리며 몰래 감탄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기에 할머니의 타투 사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들의 사연이 궁금했다. 아픔을 견디고 새겨 넣은 돌고래 세 마리는 할머니에게 어떤 의미일까. 손녀의 그림을 간직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우리 외할머니처럼 해녀 셨던 거 아닐까. 그도 아니면 할머니에게 돌고래는 품어두고 의지하고픈 작은 토템 같은 것이었을까. 그 사연이 무엇이든 몸을 옹그리고 할머니 팔에 타투를 새기는 손녀의 모습을 상상하자 왠지 가슴께가 먹먹했다.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엄마를 여의고 창녀의 손에 맡겨진 소녀. 이름도 없이 살아왔던 그녀에게 창녀는 호랑나비를 뜻하는 ‘아게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어느 날 아게하는 가슴 한가운데에 호랑나비를 새긴다. 타투를 새겨주던 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엄마 이야기를 꺼낸다.


방 안을 날아다니는 호랑나비를 발견한 어린 날, 나비를 붙잡고 싶어 엄마를 불렀지만 조용하라며 윽박지르기만 했던 엄마에 관한 기억. 결국 나비는 창틀에 끼어 날개가 찢어졌고 아게하는 망가진 나비가 곧 자신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녀에게 할아버지는 이런 얘길 해준다.


"문신은 말이지, 생명체 같은 거란다. 자신의 몸속에 또 하나의 다른 생명을 키우는 것과 같아. 그건 때때로 그 사람의 인격을 바꾸기도 해. 운명을 바꾸기도 하지. 이 나비가 너를 지켜줄 거야."


가슴에 아름다운 호랑나비 한 마리를 새긴 아게하는 다시 비참한 현실로 돌아간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아게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몰라도 그녀 자신은 안다. 볼품없는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날개를 단 호랑나비가 된 것처럼 남몰래 성장한 아게하는 다시 살아간다. 꿋꿋이 살아간다.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품어두고 의지하고픈 아름다운 생명체를 몸에 새기는 것도 근사한 일 같다고.


상처가 아름다움으로 바뀌던 장면 / 이와이 슌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타투로 몸의 흉터와 마음의 상처를 아름답게 바꾸는 사람들을 봤다. 스스로 그었던 흉터에 별 무리를 수놓고 수술 자국에 꽃을 피우고 화상 흉터에 커다란 날개를 단 사람. 죽은 강아지와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을 그려 넣는 사람. 사랑하는 이의 손편지와 간직하고픈 잠언을 적어둔 사람.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고 스스로 새긴 무늬를 들여다보는 기분은 어떨까. 제 몸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상처를 껴안은 자신이 기특하지 않을까.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특별하게 와 닿지 않을까. 어떤 무늬는 고유한 삶의 무늬를 바꾸기도 한다는 걸 나는 믿는다.


나에게도 새기고픈 무늬가 있다면, 그게 뭘까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였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유독 좋아하는 것이 없구나. 특별한 이름의 꽃도 잎도 동물도 나에겐 없었다. 나란 사람 자체가 무색무취인 것 같아 조금 우울해졌다.


그때 불현듯 작은 나무가 떠올랐다. 살면서 나무 하나를 품에 안고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자라고 있는지도 살아있는지도 쉽게 알아챌 순 없지만. 가만 가만히, 오래 자라고 숨 쉬고 제자리를 지키며 또 다른 생명을 틔우는 그런 나무 한 그루라면 좋겠다. 갈비뼈 가까운 곳에 새기고 숨 쉴 때마다 그 작은 나무를 떠올린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러다 나의 유년시절을 버티게 해 준 두 권의 책에 나무가 등장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제제의 친구였던 ‘밍기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주인공의 인디언 이름이었던 ‘작은 나무’. 어쩌면 나무는 이미 오랫동안 내 안에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나무는 상냥하고, 강하고, 용감하다네. 작은 나무는 절대 외톨이가 아니야."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할머니가 불러주던 노래


조그만 몸뚱이로 살아가는 일이 슬프고 무서웠던 시절, 내 안에 살았던 상냥하고 강하고 용감했던 작은 나무를 기억한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울고 웃었던 어린 여자애가 새삼 기특했다. 잊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걸 찾은 사람처럼 나는 기뻤다.


정작 타투를 새길 용기가 나에게 있을진 모르겠다. 그래도 새기고픈 몸의 무늬를, 의지하고픈 삶의 무늬를, 몸속에 키우고픈 생명체 하나를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꽤 근사한 일이지 싶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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