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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12. 2018

금요일 밤마다 우는 작가

아이 둘 딸린 프리랜서 작가로 산다는 건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청탁받은 글을 써서 '종종' 밥벌이를 하고 있다. 여기서 '종종'이라는 말이 내 일을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종종. 가끔. 이따금. 어쩌다 일이 들어오면 나는 글을 쓰고 돈을 받는다.


프리랜서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 출근하면 책상 위에 할 일이 놓여있는 직장인들처럼 규칙적인 업무가 없다. 동료도 회의도 퇴근도 없다. 그래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 보면 아침에 책상에 앉았다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허다하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혹시라도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건네면 더 이상 작업 의뢰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둘이 생긴 후로 나는 거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어느새 자정. 일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체력이 따라준다면 좋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해 불편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잠든다.


평일이 아니면 주말에 일해야 한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에 엄마가 빠지면 미안하다. 내 마음도 편치 않다. 나에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몇몇 일을 해냈지만, 차츰 원고 청탁을 미루게 됐다. 다른 일이 또 생기면 꼭 다시 연락 달라고 부탁했지만, 내 사정을 이해하고 다시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는 거의 없다.


2년 전에 계약한 책 작업도 임신하고 중단했다. 쌍둥이를 품은 고위험 산모였기 때문에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언제든 다시 책을 쓸 수 있다는 반짝이는 위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게 금요병이 생겼다. 금요일 밤만 되면 우울해졌다. 주중에 지친 몸과 마음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이더니 찰랑 넘쳐흘렀다. 나는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뭐라도 쓰고 싶어


이런 금요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나는 글 쓰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평일에는 짬짬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새벽까지 책 읽다 잠드는 날이 늘었지만, 다음날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다. 주말에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오전 시간을 빌려 글을 쓴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 초조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쓴다. 그나마도 남편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아이가 있는 여성 프리랜서 작가의 삶이다. 아이들이 제법 클 때까지 이 삶은 계속될 것이다. 홀가분하게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 쓰는 시간. 언제일지 모를 멀고도 아득한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가끔 턱밑까지 숨이 막힌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좋은 엄마도 좋은 작가도 되고 싶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나 자신이 없다. 이 또한 언젠가 수월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지금의 나는 그렇다.



엊그제 밤에는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읽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엄마가 된 작가, 페미니스트 작가, 대필 작가, 독립출판 작가, 성소수자 작가 등 지칭하는 말도 각양각색인 여러 작가가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부터 자신의 책이 나오게 된 과정과 때론 세세한 수입까지. 그간 겪었던 고충과 조언, 작가로 사는 삶에 대해 각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작가들의 솔직한 고민과 현실적인 조언이 전해져서 좋았다.


그래서 돈 잘 버는 작가가 있을까? 대답하자면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부유한 작가는 없었다. 물론 전업 작가로 형편이 괜찮은 작가는 몇 있었지만, 대부분 작가는 겸업을 하며 글을 쓰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프리랜서로 살고 있었다. 글쓰기로는 어느 누구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게 현실의 답이었다. 그런데도 왜 글을 쓸까.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서 작가들은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열댓 권의 책을 쓴 유명한 동화작가였다.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는 내 이야기에 그녀는 말했다.


"기본적인 생계를 책임질 본업은 따로 있어야 해요.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어요. 저도 논술 선생님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글을 써요. 글만 써서 돈을 벌 순 없어요. 대신 저는 동화를 쓰니까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이 직업을 택했어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글감과 경험을 많이 쌓아요. 작가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관찰해야 해요. 책상에만 앉아있는 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이후로도 동경하는 작가들을 만나봤지만 모두 비슷했다. 기자, 편집자, 방과 후 교실 선생님, 한국어 교사, 때론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다니며 글을 쓰는 작가도 있었다. 그 후로 나도 방송작가 경력을 살려 영상 구성이나 시나리오, 청탁받은 원고를 쓰며 프리랜서 작가로 일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내 글을 썼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상업적인 글을 쓰는 것도,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도 결국은 모두 작가의 일이라는 것. 책 속에서 작가 넬 보셴스타인이 동경하던 시인에게서 들었던 말을 옮겨본다.


“글만 쓰는 작가는 되지 마세요. 소방관이 되거나 경찰이 되거나 선생님이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화학자가 되거나 전기공이 되세요. 하지만 글만 쓰는 작가는 되지 마세요.” 작가로만 지내는 것은 울타리 너머 세상을 탐험해야 할 때 우리에 갇혀 같은 조랑말들하고만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라고 시인은 말했다. 그의 원칙은 단호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 185p


책 속의 또 다른 작가 이윤 리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에게는 어떤 경험이든 좋다고 생각해요, 항상 집에 앉아 있는 것만 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등장인물을 만든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물어요. “그럼 돈은 어디서 났니? 이 인물은 어떻게 먹고사는 거니?” 그러면 대답을 못 해요. 온갖 종류의 위기가 있지만 집에서 5주 동안 틀어박혀 있는 인물을 만드는 학생도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줘요. “먹을 걸 사러 나가지 않니? 먹을 걸 사러 밖으로 나가면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어야겠지. 그러면 사건이 벌어질 거야.” 젊은 작가들은 저 바깥에 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작가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해요. - 212p


글을 쓰는 것만이 작가의 일은 아니다. 보고 듣고 묻고 노동하고 걷고 생각하는 일 전부가 작가의 일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모든 감각으로 경험한 것들을 종이에 옮겨담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작가 메건 오코넬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내 처지와 비슷해서일지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 일을 인생의 폭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진짜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글쓰기를 생각했고 글을 쓰는 공상을 했다. 아기를 돌보는 단조로운 일상에 갇혀 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에세이를 썼다.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늘릴 방법만 생각했다. 출판사나 타깃 독자층, 원고료, 마감 일정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혐오에 빠져 일을 회피하거나 추측하거나 선망하는 일도 없었다. 더 이상 우물쭈물하거나 결말을 추측할 시간이 없었다. 정당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하려면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글을 계속 써야 했다. 앞으로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으려면 계속 써야만 했다. 새로 맡은 엄마라는 역할과 여기서 비롯된 혼돈 속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에 매달렸다. 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 역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 71, 72p


내가 왜 금요일 밤마다 울면서 글쓰기를 갈망했는지 그 이유가 선명해졌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고, 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 역할을 지키고 싶었다. 이제야 좀 후련해졌다.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그냥 지금처럼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만났던 여성 소설가는 자신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비혼으로 살겠다고. 한국에서 결혼한 여성 작가로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고. 자신은 아내와 며느리, 엄마가 아닌 소설가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여성 작가로 사는 일은 녹록지 않다. 유명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아이 둘 딸린 프리랜서 작가는 더더욱 고달프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금요일 밤마다 울더라도. 가끔 숨이 턱까지 차오르더라도. 밥벌이도 안 되는 글을 쓰더라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엄마 역할을 지키기 위해.



3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고서 한 달 동안 매일 글을 써서 올리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브런치가 불러준 '작가'라는 호칭이 너무나 벅찼고, 매일매일 쓰는 일이 간절했다. 행복했다. 요즘이 그렇다. 그때보다도 더, 글쓰기가 간절하고 행복하다. 밥벌이로 글을 쓰는 일은 줄었지만, 심각하게 걱정하진 않는다. 사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방법은 단순하다는 걸 알고 있다. 계속 쓰다 보면 글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책을 쓰게 되고, 일이 들어오고, 돈이 생긴다. 나는 경험해봤다. 그러니 일단 써야 한다. 계속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주 꺼내 읽어보는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글을 덧붙인다.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내가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때이다. 당시 내겐 아기가 둘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썼으며 침실의 낡은 화장대에 앉아 글을 썼고,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하고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개들이 내게 침을 질질 흘릴 때에도 글을 썼고 고양이들이 내 원고에 먹은 것을 게우는 가운데에서도 글을 썼다. 돈이 없을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썼다. 마침내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강인한 성품을 지녔거나 자존감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순전히 고집과 두려움으로 글을 썼다. 내가 정말 작가인지 아니면 교외에서 미쳐가는 애 엄마일 뿐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나의 첫 번째 책. 나는 계속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


+ 시시콜콜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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