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Jul 18. 2015

토요일의 발

할머니의 발을 조물조물 만지던, 토요일

밤새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키셨다. 그제까지만 해도 많이 좋아지셔서 마음을 놓았는데, 하룻밤 새 할머니는 많이 아팠다. 엄마랑 병원에 갔더니 할머니의 조그마한 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할머니의 발을 봤다. 발바닥이 터서 하얬다. 엄지발가락에도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다 문드러진 노오란 코딱지 같은 발톱들이 발가락에 묻어있었다. 마음이 시큰했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의 발을 주물렀다. 띵띵 땅땅. 단단하게 굳은 할머니의 발은 곰팡이가 피어난 흙 묻은 감자를 만지는 그런 낯선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발을 만지다 보면 되게 코끝이 찡해진다.

고단하게도 이 작은 발로 그 넓은 땅덩어리를 다 밟고 다녔는데. 그 수고 하나 덜어줄 수 있는 건, 그저 퉁퉁 부은 이 발 만져주는 게 전부라니. 퍽이나 뭉클하다.


할머니는 식욕이 대단해지셨다. 계속 배가 고프다고 먹을 걸 달라고 보채셨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끼워 드리니 참말로 맛있다며 한 입  꿀꺽하시고 아껴뒀다가 또 한 입, 한 입. 고거 하나 마시는 데 참 오래도 걸린다. 말을 걸어도 할머니는 저거 저거 먹을 것들만 가리키며 달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점점 아기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엄마 아프지 마." 눈물 콧물 훌쩍거리는 우리 엄마도 어린애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우리 중에서 나만 어른인 것 같았다. 나는 어른스럽게 할머니의 발을 꾹꾹 누르고는 "할머니, 아파요?" 물었다. 빨대를 입에 문 할머니는 아기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엄마는 피곤했던 모양인지 할머니의 발밑에 웅크리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나는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 먹고 있는,


'엄마의 엄마'의 침을 닦아주고
발을 조물조물 만지며,
그 발밑에 어린애처럼 웅크리고 누워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먹먹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언젠간 '엄마의 엄마'의 발을 가지고, '엄마'의 얼굴을 하고 쌔근쌔근 잠들 것이다. 모르는 척 핑 고개를 돌리자니 목구멍이 다 간질간질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그랬다. 꼭 딸이 있어야 한다고. 아플 때 가슴 만져주고 똥 기저귀 갈아주고 발 주물러줄 딸이 있어야 한다고 그랬다. 그건 아들도 못하고 며느리도 못하고, 딸만 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가 아플 때, 못생긴 발을 조물조물 만져주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건 딸이 할 일이다.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우는 것도 딸의 몫이다.


문득 손에 밴 할머니의 냄새가 궁금했다. 나는 손가락을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좋은 냄새가 났다.
아기 분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왠지 안심이 되어 자꾸만 킁킁, 킁킁.

할머니의 살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8개월을 더 사셨다.

그리고 안개비가 내리던 어느 봄날에 돌아가셨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의 모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