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어, 어둠, 나의 옛 친구
과거 지하철 긴자 선 차량은 역에 정차하기 직전에 반드시 조명이 뚝 꺼졌다. 그리고 승객은 일 초 정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혔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어둠이 좋았다. 캄캄해질 때마다 ‘그렇지,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항상 깊은 어둠이 찾아오지’ 하고 혼자서 멋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성찰하고,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시작 부분의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헬로 다크니스, 마이 올드 프렌드...’
-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여어, 어둠, 나의 옛 친구’
6년 전에 선물 받았던 하루키 에세이를 오늘 펼쳤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꼭 ‘채소의 기분’을 읽고 싶다며 먼지 쌓인 책장 구석에서 꺼내 읽었다. 스물 즈음엔 하루키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은데, 서른 즈음엔 하루키를 좋아한다 말하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런데 오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보니 또 좋다. 시시하고 담백해서 좋다. 편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툭툭 마음을 건드리는 글이 좋다. 이런 글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글쓰기도 글 쓰는 마음가짐도) 알기에 조그맣게 자주 감탄했다. 늦었지만 나머지 라디오 에세이 시리즈도 주문했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여러 번 노래도 들었다.
6년 전 내게 이 책을 선물했던 마이 올드 프렌드는 데면데면하다가 연락이 끊겼다. 먼 바닷마을에서 굳이 책을 사서 택배 보내왔었던 것 같은데. 이 책 다 읽으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와 교환해 읽자고 했던 것 같은데... 내일은 책 잘 읽었다고 고맙다고 먼저 연락하고 싶다. 자고 일어나면 연락처를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