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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12. 2018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밥보다 글이 절실한 날들을 겪으면서

두 번째 책 1교 시작. 104쪽 21,936개의 낱말을 썼다.


대부분이 아이들 재우고 틈틈이 소파에 앉아 쓰거나, 토요일 오전 카페에서 마무리한 글들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은 지는 일주일이 넘었지만, 오늘에야 제대로 열어보고 읽어보았다. 지난주는 아이들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유난히 보채고 우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나는 책이나 노트북을 펼쳐볼 여유가 없었다.


휴대폰으로나마 열어본 원고는 작고 흐릿해서 잘 읽을 수 없었다. 휴대폰 속에 개미 같은 글자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너희 잠든 사이에 엄마가 쓴 거야. 잘했다고 해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깜박거린다. 단정히 정렬된 작고 까만 글자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아이들 얼굴을 바라볼 때와 비슷하다. 무언가 차오르고 따뜻해진다.



“작가님은 주로 어디에서 글 쓰세요?” 

최근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대답했다. 

“소파요.”


아이들이 잠들면 나는 엉망이 된 거실로 향한다. 장난감을 해치고 소파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그렇게 지난해, 한 권의 책 원고와 스물다섯 편의 기고문, 두 편의 다큐멘터리 원고를 썼다. 그러는 동안 스물여덟 번의 강연도 다녀왔다. 책 작업도 하고 기고도 하고 방송도 만들고 강연도 하러 다니는 내가, 누군가에겐 꽤나 멋진 작가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정말이지 멋진 작가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이들이 물어뜯어 팔걸이 껍질이 다 벗겨진 소파 구석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작업실도 책상도 동료도 시간도 분위기도 없는 작가다.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쌓여있는 설거지와 널브러진 빨랫감을 힐끔거리며 한숨 쉬는 작가다. 26개월째 쌍둥이 형제를 홀로 육아 중인 엄마 작가. 나는 아이들이 잠들면 낡은 소파로 출근한다. 지금 이 글도 소파에 앉아서 쓰고 있다. 


언젠가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수강생이 말했다. 내가 이끄는 글쓰기 모임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작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너그럽고 따뜻할 것 같았다고,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치열하게 모임을 이끌어갈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겐 위로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시간이 너무 없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육아와 가사 시간이 소등되면 장난감이 어질러진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새벽까지 글을 썼다. 늦은 저녁도 거르고. 밥보다 글이 절실한 날들이었다. 자주 깨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글은 쓰다가도 자꾸만 뚝뚝 끊겼고 나는 온몸이 아팠다. 좀처럼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날들과 글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완성한 글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벅차고 고맙고 슬프고 외롭고, 그래서 울 것 같은 그런 마음.


정말로 내가 엄마가 된 후에 쓴 글들이 너그러워졌는지, 따뜻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간절하고 치열하게 쓴 것은 맞다. 그 초조함과 조급함이 글에 드러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엄마가 되고 나면 아이들 이야기만 쓰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와 나의 엄마, 보이지 않았던 작은 존재들에 대해 더 많이 쓰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글을 쓰면서 고된 마음을 보듬고 흐릿해진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쯤 두 번째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편집자의 믿음과 배려로, 제목도 글도 일러스트도 내 의견이 주로 반영될 것 같다. 누군가 손대지 않은 오롯이 내가 쓴 글들로 페이지가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좀 두렵고 어깨가 무겁다. 그런 마음 한편, 나는 선명하게 행복하다. 글 쓸 수 있어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그리고 유명한 작가의 완성된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 날 것의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Tim Eitel, Architectural Study (Barrag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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