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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17. 2018

도토리 같은 날들

작고 귀여운 소소한 날들이, 우리를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과 참나무가 있는 카페 테라스에서 저녁을 보냈다. 이따금씩 똑 또르르르, 하고 나무 바닥에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곳이었다. 분홍색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빵도 먹고 차도 마시고 도토리도 주웠다.

똑 또르르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갔다. 작은 손으로 꼬옥 쥐어온 도토리를 의자 위에 하나씩 올려두었다. 별거 아닌 시간이 행복했다.

도토리 같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다람쥐가 먹으려고 땅속에 묻어두고선 깜빡 까먹은 도토리들이,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싹이 나고 나무가 되고 참나무 숲이 된다지.

행복했던 하루도 앞으로의 많은 날들에 묻혀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깜박 잊어버리고 불평하며 살지도 모르고. 그렇다 해도 도토리 같은 작고 귀여운 소소한 날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임을 안다.

도토리를 한 움큼 주워와 집에서 데굴데굴 굴리며 놀았다. 놀다 보니 도토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반쯤 줄었고 아이들은 웃다가 잠들었다. 이후로 며칠 동안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도토리를 발견했다. 그때마다 무척 기뻤다.

간직하고 싶은 날들. 땅속에 도토리를 묻어두는 다람쥐 같은 마음으로 여기에 남긴다.


전몽각 <윤미네 집> 사진


왜 장가 못 가느냐고 주변에서 핀잔 받던 내가 어느 사이엔가 1녀 2남의 어엿한 가장이 된 것이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온 집안 가득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몰래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뒹굴기도 일쑤였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 사는 분위기를 먼 훗날 우리의 작은 전기傳記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만 돌아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 전몽각, 윤미네 집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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