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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28. 2018

물 복은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이옥남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추석 명절 다 지내가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제 가고 딸은 오늘 가고 손자는 와서 엄마 가는 것 배웅하고 겨우 점심 해 먹고는 금방 간다. 손자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꼬 난다. 왜 그리고 섭섭한지. 이제는 자꼬 외로운 생각이 들면서 슬프다.

밖에 나가봐도 시원한 마음은 하나도 없고 먼 산을 바라봐도 괜히 눈물만 날 뿐이지 즐거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비감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하리. 자식들 있어도 다 즈의 생활에 맞추어서 다 가고 나 혼자 남으니 앉아봐도 시원찮고 누워봐도 늘 그식이고 이웃도 적막강산이고.

비는 왜 그리 오는지 앞마당에는 큰 봇도랑 만치 물이 내려가고 뒤란에도 보일러실에도 전무 물 개락이고 밭에도 전부 샘이 터져서 발 딛고 들어서면 진흙에 풍덩 빠져서 어띃게 나올 수가 없네. 물 복은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여느 복도 좀 탔으면 좋으련만.

- 이옥남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2003년 9월 23일 일기


"수리야, 애기들 있던 자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어제오늘 엄마랑 통화하는데 물기 젖은 목소리다. 이제 좀 컸다고 헤헤거리고 동동거리며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손주 녀석들이, 어른들 눈에는 세상 가장 예쁜 것들인가 보다.


애들 낮잠 재우고 책 읽다가 나도 훌쩍 물기 어린다. '혼자 남으니 앉아봐도 시원찮고 누워봐도 늘 그식인' 빈집에 남아있을 우리 엄마가 자꾸 눈에 밟혀서. 엄마, 우린 물 복을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이옥남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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