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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0. 2018

현우

라이츄의 마음

피카츄는 포켓몬입니다. 대부분의 포켓몬들은 진화를 합니다. 아니 대부분의 포켓몬들은 진화를 원합니다. 진화는 포켓몬의 숙명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화를 하게 되면 대게 몸집이 커지거나, 더 강한 기술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라이츄는 피카츄의 진화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카츄는 진화를 원치 않습니다. TV를 보는 어린 시절의 저 역시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지우 역시, 아 여기서 지우는 피카츄의 주인입니다. 아무튼 지우 역시 피카츄가 진화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럼 라이츄는요?"


이미 인내와 시련의 시절을 겪고 진화를 해낸 라이츄는요. 진화를 하긴 했는데, 오히려 본인의 과거형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빵을 먹으면 나오는 스티커에서도 라이츄면 뱉고, 피카츄면 고이고이 집에 모셔갑니다.


라이츄는 옛 시절의 피카츄가 얼마나 그리울까요.


그리움. 라이츄가 느끼는 그리움의 깊이가 얼마일지 가늠은 안 되지만,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저를 구성하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좋게 말해 그리움이지. 저는 미련하거나 추억에 빠져 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잠을 청하려 혼자 누운 밤에는 그리움의 무게에 속절없이 무너져 버릴 때도 있습니다. 근데 사실 어쩔 수 없습니다. 포켓몬이나 사람이나 지나간 곳으로, 지나간 형태로 돌아갈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그리워하기로 하고 삽니다. 무언가 아쉬운 일이 있다면 아쉬운 만큼 아쉬워합니다. 사실 이런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지만. 다시 말해, 치사량만큼의 그리움들을 담담하게 받아 낸다고 하여 덜 아프거나 덜 힘든 것은 아니지만.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냥 포기해 버립니다.


저는 그냥 "라이츄"일뿐입니다. 라이츄이기에 피카츄의 시절을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자기 위로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본인이 라이츄인지도 모르면서 피카츄인 척하는 사람들, 아니 포켓몬들을 보며 혼자 비웃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상상하기도 합니다. "아. 나 아직 피카츈가?" 그러다 보면 항상 어제는 피카츄였고, 오늘은 라이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피카츄를 좋아하더라도, 모든 인형 뽑기에 피카츄만 가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리움을 조금 더 즐길 줄 아는, 너무 슬퍼하지 않는 라이츄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다른 라이츄들도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이어가는 글쓰기 모임이 하나 있어요. 금요글방 <마음 쓰는 밤>. 보통사람들의 글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자주 만납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아까워서 가끔씩 좋았던 멤버의 글을 이 공간에 공유하려 합니다. 글을 쓰는 한,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음 쓰는 밤 현우님의 글입니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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