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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0. 2018

경미

5년 동안의 연애

지난 5년 동안 꾸준하게 해 온 일이 혹시 있으신가요. 누군가는 공부를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열심히 일을 해서 경력을 쌓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문득 5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지네요.


저는 말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한 사람과. 사실 5년 하고도 몇 개월 더 지났는데, 하루하루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오늘이 1991일째입니다. 제가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저의 소소한 연애사에 ‘행복’을 논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복할까요? 저의 짝꿍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싶었다는데, 어쨌든 서른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학교에 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특히 회사분들이라면 열에 아홉은-도대체 왜 만나냐고 묻습니다. 흠, 글쎄요. 그렇게 물으시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왜 ‘왜 만나냐고’ 묻는지 저도 한 번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뻔한 레퍼토리가 이어집니다. ‘결혼을 하려면~' 어쩌고저쩌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군요. 학생이라는 이야기만 했는데도 이렇게나 걱정을 해주는 분들이 많으니, 우리 사회에 아직 정이 남아있긴 한가 봅니다. 그럼, 저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지난 주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평일에는 회사 다니랴, 공부하랴 서로 바빠 잘 만나지 못하니 아무래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기분도 낼 겸 종로 3가의 핫플레이스라는 익선동에 가보았습니다. 길거리가 아주 예뻤습니다. 사람들도 많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분위기 좋은 곳도 많고. 과연 인싸들이 모이는 장소 답더군요.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까운 쭈구리 둘은 연신 우와, 우와, 감탄하며 여기저기 골목골목을 구경하다 쌀 호떡을 하나 사 먹었습니다. 쫄깃한 떡 안 쪽에 치즈가 들은 것을 기름에 자글자글 튀기듯 구워 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겠죠. 그러고는 좀 더 걷다가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별거 없네, 하셨을까요? 그런데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걷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특히 요즘같이 선선한 가을날에는. 꿀, 치즈, 잡채… 호떡 속 하나 못 고르는 제 옆에서, 자기도 잘 못 정하는 주제에 나름 심각하게 뭘 먹을지 골라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든든하기도 하고. “오늘 인생 샷 꼭 한 장은 찍어줘야 돼” 엄포를 놓으니, “어휴 이래서 인스타 하면 안 된다니까” 투덜대면서도 거기 서 봐라, 좀 더 웃어라, 진짜 인생 샷 찍어주려는 노력이 가상합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눈치인데 저의 저질 체력이 바닥을 보이는 걸 눈치채고 빠이빠이 할 때면 고맙기도 하죠.


사실 저의 지난 5년 동안의 연애는 지난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지고 볶고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박 터지게 싸운 날들도 있지요. 하지만 결국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네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와 나의 시간이. 시간과 시간, 분과 분 사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틈바구니 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익숙하면서도 놀라운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허술한 듯하면서도 끈끈하고, 가끔 빙구 같지만 그런대로 끼리끼리 잘 만났다 싶은 온전한 내 편.


‘아이고,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남녀 사이 오래 만나면 별로 안 좋아’ 또 한 번 걱정들이 달려들어옵니다. 혹시 비슷한 처지여서 고민인 분들이 있다면 저의 필살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눈썹을 8자로 만들고, 입꼬리는 위로. 그리고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전 평~생 이럴 건 가 봐요.” 순진한 듯 뻔뻔한 웃음으로 마무리.


어김없이 금요일이 찾아왔고, 내일은 데이트가 있는 토요일이네요. 내일도 사실 별거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별거 없음에 제가 참 행복한데, 그럼 저 행복한 거 맞겠죠? 네, 저 행복합니다 : )







<마음 쓰는 밤> 경미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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