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처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생애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은 엄마일 것이다. 당황스럽게도 반대의 기억은 아주 선명한데, 내가 생애 처음으로 미움의 화살을 쏜 것도 엄마였다.
늦은 밤이었다. 잠에서 덜 깨 부스스한 상태로 아빠가 건넨 수화기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겨우 다섯 살이었던 나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말했다. “엄마 미워.”라고. 그게 내 기억의 전부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부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던 아빠의 유치함과 치사함에 휘둘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나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남이 되었다. 만약 내가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언제 올 거냐고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나는 그 짤막한 기억을 오래도록 붙들고 자랐다.
결혼을 앞두고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어느 밤, 문득 그 기억이 떠올라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나랑 통화한 거 기억나느냐고. 엄마는 기억난다고 했다. 그때 전화를 끊고 많이 울었다고. 다섯 살 꼬맹이의 말이 진심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두고 떠난 게 미안하기도 하고, 평생 미운 사람으로 기억될까 봐 무서웠다고. 미움의 화살을 쏜 건 다섯 살 무렵이었는데, 그게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안 것은 25년이 더 흐르고 나서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나도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건 지금껏 살아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내 인생에 도돌이표를 찍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기억 못 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이랬을 것 같고, 나를 돌보던 젊은 엄마의 기쁨과 막막함과 고단함이 이랬을 것만 같다. 나로 인해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꼈을 테고, 나로 인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슬픔도 느꼈을 테다.
다섯 살 아이를 두고 떠난 마음을, 그 아이에게 미움받은 상처를,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보며 다시금 곱씹고 아파하고 미안해한다. 지금도 종종 나는 엄마에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 말에 상처받는 이는 엄마이기도 하고, 먼 훗날의 나이기도 하다.
<마음 쓰는 밤> 다은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어떤 상처는 도돌이표처럼 나에게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다시 상처를 쏘고, 그것은 먼 훗날의 나에게 도착하겠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