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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24. 2015

금요일의 사바사나

금요일 밤은 편히 쉬어라, 나마스떼

첫 요가 수업 때 선생님이 그랬었다.


모든 질병은 무지와 적대감에서 비롯된다고


바로 내 코앞에 있는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돋아난, 상대방을 향한 ‘적대감’은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간 무지와 적대감으로 엄청난 전쟁이라도 치렀는지 온몸이 부서져라 통증을 호소했다. 요가 매트에 앉아서 천장으로 손을 뻗어 쭈우우욱 기지개를 켰다. 단지 허리를 곧게 폈을 뿐인데도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아아. 시원하다.


요가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운동이다. ‘역시나 시간이 없어.’라는 핑계로 쭉 쉬다가도 온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독하게 지쳤을 때, 나는 요가를 찾곤 한다. 아마 요가를 해본 사람은 요가의 맛을 알 것이다. 온몸의 자잘한 근육까지 모조리 사용하는 요가는 신기할 만큼 과학적이고, 그 동작과 선이 신비할 만큼 아름다운 운동이다. 요가에서 중요한 건 호흡과 명상이다. 요가의 모든 동작은 호흡과 함께 이뤄지고, 명상으로 끝이 난다.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아진다.


요가는 반드시 '사바사나(SABASANA)'라는 자세로 마무리한다. 이른바 송장 자세라고도 하는 '완벽한 쉼'의 자세이다. 사바사나 자세는 동작 설명을 하기가 무안할 정도로 아주 쉽다. 편안히 바닥에 누운 후, 양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발끝을 투욱 떨어뜨린다. 양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고 몸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놓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긴장을 풀고 근육을 이완하는 자세인데, 그냥 작은 대(大) 자로 뻗은 모습이다. 그 채로 깊고 느린 호흡을 하면 된다.


(위의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구작가의 캐릭터 '베니'의 사바사나 자세, 손의 폭만 조금 줄이면 완벽한 사바사나 자세이다. 그나저나 유우니 사막에서 베니처럼 누워 있고 싶다. )


사바사나를 하는 동안에는 실내에 모든 불을 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상태. 그때 선생님은 '편히 쉬어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마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바사나 상태가 가장 힘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많은 생각이 불쑥불쑥 쳐들어왔다. 누구한테 메시지 안 왔을까? 저녁은 뭐 먹지? 오늘 드라마 뭐하더라? 어떻게 해야 아무 생각을 안 하지? 심지어는 목덜미나 콧등 같은 부위가 갑자기 가려워지기도 한다. 움직여서 긁고 싶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당장 긁고 싶다.


하지만 몇 번의 수련을 하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르르 가라앉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중력도 없는 진공의 상태에서 두둥실 부유하는 기분이다. 평온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걸 나는 요가에서 처음 해봤다. 단 몇 분간의 명상에 불과하지만, 사바사나의 쉼은 굉장히 상쾌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이것이 내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지칠 대로 지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때가 있다. 훌쩍 여행을 떠나도 좋겠지만 그마저도 두려울 정도로 내 존재가 쪼그라든 상태라면,

나는 사바사나를 권한다.


하루하루가 반전의 연속이었던 스펙타클한 일상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연락이 언제 올까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도 off 해둔 순간은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당신에게 '쉰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두 눈을 감고 있어도 온갖 잡생각과 걱정들이 당신의 머릿속을 괴롭힐 테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 누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바닥에 대자로 뻗어, 당신은 편히 쉬어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마라. 그 채로 깊고 느린 숨을 내쉬면서 당신의 삶에 '사바사나' 시간을 가져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주도 쉼 없이 달려온 당신, 오늘 밤만은 편히 쉬기를.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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