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의 무게
두 번째 책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인쇄 감리를 보러 파주에 다녀왔다. 까만 글자들과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담길 책에 인쇄 감리를, 굳이 작가가 가서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궁금하고, 함께 책을 만든 황 편집자님과 정 디자이너님과 첫 인쇄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부탁드렸다.
인쇄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너무나 놀랐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진한 잉크 냄새가 먼저 달려들었다. 종이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기계에서 나의 책 표지가 아주 빠르게 인쇄되고 있었다.
우리는 기장님께 큰 소리로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정 디자이너님이 몇 번 색 수정을 부탁하셨고, 나의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미세한 색감을 기장님이 조정해 인쇄해주셨다. 띠지 인쇄를 기다리는 동안, 기장님이 표지와 본문 몇 장을 자르고 접어서 책처럼 만들어 주셨다.
막상 인쇄된 나의 책을 받아 들자 부끄러워졌다. 고수리 고수리 고수리. 아무래도 특이한 내 이름이 곳곳에 너무나 많이 찍혀 있어서 부끄러웠다. 오늘 편집자와 디자이너 말고도 인쇄소 기장, 마케터, 제작 부장 등 책을 만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내가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장님이 인쇄해 접어준 나의 책은 무척 가벼워서 손바닥에 꽃 한 송이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흑백 그림과 분홍색 타이포 디자인이 어우러진 책은 벚꽃을 닮아있었다. 꽃 한 송이의 존재만큼 가볍고 아름답고 뭉클했다. 이 책이 완성되어 두껍고 단단한 한 권의 책으로 만져진다면 나는 조금 울지도 모르겠다.
오늘 파주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불고 꽃가루가 날아다녔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고개만 올려다보면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탁 트인 하늘 위로 새들이 날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엘튼 존의 'skyline pigeon'을 연이어 들었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