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Mar 28. 2019

3년 동안 책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후기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두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더디지만 간절하게 3년 동안 쓰고 만든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3년은 저에게 커다란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쌍둥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거든요. 아주 행복했지만 동시에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열 달 동안 두 생명을 품고 낳아 돌보는 일은 몹시 어렵고 고된 일이더군요. 엄마가 된 저는 몸도 마음도 완전 연소되어 매일을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며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혼자 견디는 사이에, 날마다 선명해지는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만 투명해지는 걸 느끼며 옅은 우울증도 앓았습니다. 사실은 그 시간들이 너무나 캄캄하고 막막해서, 다시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에 우는 밤이 많았습니다.


그즈음이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연재 제안이었어요. '너무나 너무나 쓰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 하나로 저는 덥석 손을 잡았고 어떻게든 마감에 맞춰 하나씩 글을 써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밥을 짓고 청소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글을 썼습니다. 새벽 수유를 하는 동안에도 24시간 카페를 들락거리며 내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글들을 쏟아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걷던 새벽 거리에서 자주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렇게 2017년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되돌아보면 이 책의 시작은 위클리 매거진 <다정한 날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위클리 매거진 연재는 책 원고 쓰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완성도 있는 글을 마감에 맞춰 쓰는 일, 독자라는 편집자에게 반응을 살피는 일. 공개적으로 글을 선보이기에 오히려 책 원고보다도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글을 업로드할 때마다 묵직한 긴장감과 책임감이 느껴졌죠. 그래서일까요. 실제로 매거진 <다정한 날들>에서 책에 실릴 중요한 원고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브런치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요. 덕분에 글 쓸 수 있었습니다.


16주 동안 글을 연재하면서 무뎌졌던 글쓰기 근육을 다시 만들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연재가 끝나고도 저는 계속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장난감이 어질러진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글을 썼습니다. 메모든 일기든 긴 글이든. 무엇이든 쓰고 틈틈이 인스타와 브런치에 올렸습니다. 2018년 여름, 마침내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밥보다 글이 절실한 날들이었다. 자주 깨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글은 쓰다가도 자꾸만 뚝뚝 끊겼고 나는 온몸이 아팠다. 좀처럼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날들과 글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완성한 글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벅차고 고맙고 슬프고 외롭고, 그래서 울 것 같은 그런 마음.

정말로 내가 엄마가 된 후에 쓴 글들이 너그러워졌는지, 따뜻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간절하고 치열하게 쓴 것은 맞다. 그 초조함과 조급함이 글에 드러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엄마가 되고 나면 아이들 이야기만 쓰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와 나의 엄마, 보이지 않았던 작은 존재들에 대해 더 많이 쓰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글을 쓰면서 고된 마음을 보듬고 흐릿해진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있다.  

- 고수리의 브런치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에서


쓰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책 소개가 아니라, 작가의 하소연 같은데요. 그러면 좀 어떤가요. 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키친테이블 라이팅을 하고 있을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람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명작가에게 힘내라고 계속 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경험해보니 글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건, 시간도 재능도 영감도 아닌 간절함이더군요. 간절함에서 나온 진심은 반드시 어딘가에는 가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자랑스러워요. 사랑스럽습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떼어내 활자로 옮긴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분명한 건, 이 책을 쓰는 동안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나를 쓰다듬고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과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글 쓰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요.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제 진심을 전해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막상 인쇄된 나의 책을 받아 들자 부끄러워졌다. 고수리 고수리 고수리. 아무래도 특이한 내 이름이 곳곳에 너무나 많이 찍혀 있어서 부끄러웠다. 오늘 편집자와 디자이너 말고도 인쇄소 기장, 마케터, 제작 부장. 책을 만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내가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장님이 인쇄해 접어준 나의 책은 무척 가벼워서 손바닥에 꽃 한 송이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흑백 그림과 분홍색 타이포 디자인이 어우러진 책은 벚꽃을 닮아있었다. 꽃 한 송이의 존재만큼 가볍고 아름답고 뭉클했다. 이 책이 완성되어 두껍고 단단한 한 권의 책으로 만져진다면 나는 조금 울지도 모르겠다.

- 고수리의 브런치 '인쇄소에서' 중에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길이 오갔습니다. '수오서재' 황은희 편집자님은 3년 전부터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제 글을 애정으로 읽어주셨어요. 도무지 한데 묶이지 않을 것 같은 글들을 가지런히 의미 있게 구성해주셨고요. 가장 감사한 건, 전적으로 작가를 믿고 존중해주신 것. 책에 실린 모든 글에 단 한 번도 빨간펜을 긋지 않으셨어요. 제가 온전히 제 글을 고민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욱 감사드려요.


황은희 편집자의 구성 결과물


'즐거운생활' 정지현 디자이너님도 그동안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셨습니다. 글을 읽고 엉엉 울기도 했다고 고백하는 디자이너의 마음으로부터 책이 만들어졌어요. 좋았던 문장을 뽑아주시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표지작업 때는 수록된 삽화를 모두 넣어 시안을 뽑아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시안을 두고 행복한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작가의 원고를 정독하고 감응하며 책을 만드는 손길은 어떠했을지 생각만 해도 벅차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지현 디자이너의 북디자인


그리고 이 책에는 수명 작가의 연필그림이 수록되어 있어요. 수명 작가님은 제가 평소 좋아하던 일러스트 작가였습니다. 연필로만 그리는 그림과 작가의 생각이, 제가 쓰는 글과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작가님이 흔쾌히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수명 작가님은 기존에 그려두었던 그림이 아니라 원고를 읽고 열 개의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유일한 그림들이지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수명 작가의 그림


3년 동안 이런 과정과 손길들을 거쳐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가 만들어졌습니다. 정말 길고 지루하지요. 그런데 거의 모든 책이 기간만 다를 뿐, 이렇게 길고 지루하고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단언컨대 한 번이라도 책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책도 허투루 대하지 못할 거예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책도 저마다의 시간과 사연과 정성을 품고서 독자에게 전해지니까요. 이것이 제가 종이책을 사랑하고야 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를 읽어줄 독자들을 위해 작은 선물도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시면 포인트 차감으로 미니북 모양의 양장 포스트잇을 받으실 수 있고요. 책을 소개하는 띠지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쉬워  띠지를 잘라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앞날개와 뒷날개에 작가 문장을 새겨두었습니다.  


양장 포스트잇과 띠지 책갈피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고 사랑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나를 살게 했던 사람들과 마음에 관한 기록입니다. 마주 앉은 우리 생김새가 다 다르듯 세상엔 이다지도 다 다른 삶들이 있다고. 모습과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그리하여 이렇게 살아가고야 만다고요.

 

막상 책 내용은 하나도 없는, 지극히 길고 사적인 후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라도 책과 책을 만든 이들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해요. 더디지만 간절하게 3년 동안 쓰고 만든 책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함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교보문고

예스24


매거진의 이전글 인쇄소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