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Apr 16.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이 슬픔과 함께

두 달째 아이들이 아프다.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동안 감기, 폐렴, 중이염은 모두 거칠 거라고. 육 개월은 아플 거라고. 다들 겪는 과정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의사는 웃으며 말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밤만 되면 열이 오른다. 기침을 하다가 이불에 토를 하고, 한밤중에 깨어나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갓난쟁이 둘을 돌보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나는 시간마다 해열제를 먹이고, 오한에 떠는 아이를 주무르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곁에 쓰러져 잠을 잔다. 아이들의 감기는 고스란히 나에게 옮겨와 나도 감기를 달고 산다. 엄마가 된 지 27개월이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아이들 약을 먹이면서도 코를 닦아주면서도 안고 달래면서도 나는 줄줄 운다.


어젯밤에도 아이들은 아팠다. 그저 안아줄 수밖에. 아이들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프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이런 밤들을 보내면서 우리보다 더 아픈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고통스러울지. 부모가 되어보니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다른 부모 마음을 헤아리다가 또 눈물이 차오르곤 한다. 사실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서. 나와 내 아이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미안한 마음이 북받친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다섯 해가 지나는 사이 나는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예전보다 감수성이 짙어졌다.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손을 잡고 걷다가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을 마주 볼 때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이들 없이 여기에 살아가는 부모들을 생각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정말로 그런 순간들을 자주 만난다. 그럴 때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선명한 슬픔을 느낀다. 가슴이 아파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뱃속에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었던 마음, 너무 조그만 아이를 처음으로 안았던 마음, 젖을 물리며 눈을 마주치던 마음, 아이의 배냇짓에 기뻐 부풀었던 마음, 아픈 아이를 껴안고 같이 울던 마음, 옹알이에 대답하던 마음, 첫걸음마에 요란하게 기뻐던 마음, 작은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걷던 마음, ‘엄마’ 부르던 아이의 첫 목소리를 기억하는 마음, 보드라운 볼을 만지는 마음, 다칠까 봐 걱정하는 마음, 왜 우는지 헤아려보는 마음, 달려가는 아이 뒤를 따라가는 마음, 안겨오는 아이를 안아주는 마음, 잠든 얼굴을 다 보는 마음.


부모들이 겪었을 다른 수많은 마음조차도.

나는 기억하고 싶다. 이 슬픔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 나 같은 꽃이 피어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