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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n 28. 2019

요가하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우리 엄마는 요가하는 할머니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랑 요가를 했다. 엄마가 서울에 올라온 참에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 같이 가자했다. 딸내미를 따라 요가하러 온 엄마에게 눈길과 질문이 쏟아졌다. "저희 엄마가 요즘 요가에 푹 빠지셨어요. 너무 좋대요”하고 엄마를 소개했다. "그래 봤자 2개월밖에 안 됐어요." 엄마는 수줍게 웃었다.


엄마는 요가하는 할머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요가를 시작했다. 겨우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마는 평생 왜 이걸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요가가 너무 좋단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며 약을 달고 살던 엄마였다. 사실 요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몸에 무리가 가진 않을까.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요가원 선생님은 요가를 하고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가 말했다.


"허리랑 무릎이 아파서 거의 매일 병원을 다녔어요. 그런데 요가를 하고 나서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어요. 무엇보다도 요가 자체가 저에게 잘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몸에도 마음에도. 건강함과 충만함을 줘요. 운동보다는 수련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네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아서 평생 하고 싶어요."

"요가는 어떤 사람에겐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하죠. 저도 그래요. 평생 하고 싶어요."


여행자로 살다가 우연히 요가를 만나 지도자까지 되었다던 선생님도 웃으며 말했다. ‘저도요. 평생 하고 싶어요.’ 나도 속으로 중얼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사람들은 자매처럼 나란히 앉아 같이 요가하는 우리 모녀가 부럽다고 했다. 나도 뿌듯했다. 엄마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요가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선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랑 해외여행 가서 외국인들이랑 같이 요가해봐야지. 말은 통하지 않아도 요가는 다 똑같으니까. 엄마에게 말했더니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아쉬탕가 빈야사라는 요가를 수련했다. 호흡과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요가였다. 호와 호와. 호흡하며 몸을 움직였다. 보기보다 어렵고 쉴 틈 없이 이어져서 금세 땀이 송글 맺혔다. 엄마가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되어 자주 곁눈질했다.


엄마는 나보다도 유연하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뛰어나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고양이처럼 고요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움직였다. 엄마의 작고 통통한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감격스럽기도 했다. 늘 허리랑 무릎이 아프다며 기운 없이 누워있던 엄마가 건강히 움직이고 있었다. 요가하는 엄마를 보며 작은 꿈을 보태었다. 나도 요가하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엄마는 요즘도 꾸준히 요가를 한다. 며칠 전에는 석 달 동안 한 번도 수련에 빠지지 않았다고. 수련생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지만 요가가 너무 좋다고 전화로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는 젊은 사람들 대화에 끼지 못해 20분 먼저 매트에 앉아 혼자 명상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나 고요하고 좋다고. 요가를 좋아했던 우리 딸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어두운 매트 위에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호흡하고 몸을 움직이고, 다시 조용히 빠져나와 가만히 기뻐하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나이 든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오른다. 갈색 털은 빳빳하고 윤기를 잃었지만, 느리고 차분한 몸짓은 우아하고, 녹색 눈동자는 깊고 푸른. 나는 그런 엄마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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