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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n 28. 2019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둘째가 작은 수술을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할 것 없다 했지만, 세 살배기 몸에 전신마취를 하고 배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진행하는 복강경 수술이었다. 엄마 속은 바싹 말라갔다. 한동안 잠을 설쳤다.


수술 당일 새벽,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병원에 갔다. 어린이 병동은 새벽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주삿바늘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는 발등에 링거를 꽂았다. 아이는 수술 전 금식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잠이 덜 깬 데다가 난데없이 주삿바늘을 꽂은 터라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낯선 장소와 기류를 눈치 챘는지 자꾸만 안아 달라 보챘다. 아이를 껴안고 같이 침대에 누웠다. 아이는 자다 깨다 하며 옆에 엄마가 있는지 확인했다.


수술실에 갔다. 엄마는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로 수술실 문턱까지 곁에 머물 수 있었다. 가운과 헤어캡과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수술 대기실에 들어갔다. 문 앞에서 악쓰며 울고 있는 민머리 아이를 마주쳤다. 대기실에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모두 무표정해서, 문 앞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서, 그중에서도 우리 아이가 가장 어려서. 갑자기 겁이 났다. 의료진들이 바삐 오갔다. 건조하고 피로하고 긴장된 분위기. 나는 아이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아니,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것도 같았다.


마취과 선생님들이 오셨다. 웃으며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예요. 몇 살이에요. 배꼽이 어디 있나. 사인펜으로 배에 동그라미 그려 볼까요. 선생님이랑 잠깐 놀러 갔다 올까. 엄마한테 안녕, 인사할 수 있니? 그러자 아이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울고불고 떨어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조금 놀랐다. 아이는 손을 흔들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오히려 어리바리하게 서 있는 엄마한테 걱정 말라는 듯이.


아이를 보내고 나서야 비죽 눈물이 새어 나왔다. 작은 수술이라고는 했지만, 별별 걱정과 불안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술실 복도에 서서 눈물을 닦았다. 기다리는 수밖에. ‘수술준비중입니다’, ‘수술중입니다’, ‘회복중입니다’ 문자가 도착할 때마다 가슴이 선득했다.


몇 시간 후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난 아이를 만났다. 멀리서 엄마아빠를 발견하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반가웠다. 별 탈 없이 수술을 마쳤구나. 다행이구나. 잘 해내주었구나. 30개월, 아직 아기라고만 생각했는데 훌쩍 커버린 둘째가 대견했다. 아이를 오래 안아주었다. 기쁘고 소중했다. 그냥 그 순간 모든 것이.


어린이 병동에서 너무 많은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났다. 아직 병이라는 게 두려움이라는 게 뭔지 잘 몰라서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부모들의 얼굴을 살피며 그 안에 꾹꾹 눌러두었을 갖가지 마음들을 생각했다.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 너무도 흔한 그 말을 병원에서 사무치게 느꼈다.


수술실 근처를 오가면서도 내 맘대로 울지 못했던 건, 우리 아이보다 더 아픈 아이들이 있고, 나보다 더 힘든 부모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술실 복도를 서성이거나 찬 벽에 기대어 있던 창백한 얼굴들을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겪었던 하루를 여러 번, 또는 평생 겪어야 할지도 모를 가족들을 생각했다. 아픈 이들을 살리려고 피곤한 얼굴로 바삐 오가는, 이런 하루가 일상이 되었을 의료진들을 생각했다. 정말이지 생명을 키우는 일은 너무나 크다. 어렵고 힘들고 무겁다. 생명을 지키는 일 또한.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다. 긴장이 풀리자 참을 수 없이 잠이 쏟아졌다. 힘든 하루를 보낸 가족들 모두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수술을 한 둘째도, 같이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 첫째도. 유난히 엄마 품을 찾았다. 두 아이는 몸을 말고 따개비처럼 내 옆에 붙어 잤다.


한밤중에 잠이 깼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온몸에 식은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몸에 기운이란 게 모조리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캄캄하고 으스스했다. 시간이 뒤죽박죽 느껴졌다. 이상한 적막함이 몰려들려는 순간,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한참을 오도카니 아이들을 보고 앉아 있었다. 문득 아이들이 살아 숨 쉬는 게 신기했다. 내 몸에서 나와 울고 웃고 자라고 아프고 잠들고 다시 눈 뜨는 게 신기했다. 그렇구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가능한 거구나.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고되지만 충만한 일이구나.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이구나. 가만히 녀석들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주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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