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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2. 2019

엄마도 삼시세끼 지어 먹이는 일이 지겨워

솔직하게 말해준 엄마가 고마웠다

“엄마, 좀 도와줘.”


두 아이가 유행성 질병에 걸렸다. 다 나을 때까지 가정보육을 해야 하는데 때마침 일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프리랜서의 일은 몰릴 때 갑자기 몰려들었다. 거절하면 다음 기회는 없었고, 일의 이력이 곧 나의 경력이 되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일단 해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아프고 남편도 바빴다. 생각나는 사람은 하나뿐.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방에서 학원 일을 하는 엄마는 마침 휴가라며 도와주겠다고 올라왔다. 고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일을 하러 갔다. 손주들 보는데 엄마의 휴가 절반을 다 써버리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시기에 엄마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무도 도와줄 이 없다는 막막함, 일할 시간이 없다는 초조함, 아픈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안고서 울 듯 한 얼굴로 발만 동동거렸을 것이다.

   

“딸, 그렇게라도 일하는 엄마가 되어야 해. 강해져야 해.”


엄마는 어서 네 일이나 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엄마는 집을 치우고 한가득 장을 봐와 종일 음식을 하고 손주들을 먹이고 돌봤다. 냉장고를 열면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딸내미 밥이라도 거를까 봐 틈틈이 내 밥상까지 차려주었다. 그럼 나는 고맙다고만 하면 될 것을, 엄마에게 미안하고 이런 상황들이 답답해서 마음과는 다르게 퉁명스럽게 굴었다. 아픈 아이들까지 보챘다. 걱정과 예민함이 뒤섞인 공기에 집안은 냉랭해졌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엄마가 돌아가야 하는 날. 그날도 나는 저녁에 강연이 있었다. 나갈 준비를 하다가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엄마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혼자 아기들을 돌보던 언젠가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나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부러 살갑게 굴었다. 왜? 왜 그래? 아니야. 암것도 아니야. 그러던 엄마가 한숨처럼 후, 말을 뱉었다.


“자식들 삼시세끼 지어 먹이는 일이 지겹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건 내가 맨날 하던 말이기도 했다. 엄마, 애들 밥 지어 먹이는 일이 지겨워. 설거지하기 싫어. 집안일은 왜 해도 해도 티가 안 나?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 일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힘들어 죽겠어. 버거워. 지겨워. 하기 싫어. 답답하고 힘들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해 토로하던 나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너도 그걸 하고 있잖아. 엄마도 알아. 지겹다는 거. 나는 내 딸이 아이들 키우면서도 떳떳하게 편히 일했으면 좋겠어. 인정받았으면 좋겠고. 그런데 네가 아등바등 사는 모습 보니까 되게 속상해. 엄마도 휴가를 이렇게 다 써버려서 속상하고, 너 혼자 두고 내려가야 하는 것도 속상하고. 그냥 다 속상하다.”


엄마... 나는 말문이 막혀서 멋쩍게 웃으며 엄마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집을 나섰다. 밖에서 작가일 때의 나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사람. 잘 웃고 잘 들어주는 다정한 사람. 자식과 살림을 일구는 생활의 흔적이나 억척스러움, 초조함 같은 것들은 내비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와락 몰려드는 막막함인지 먹먹함인지 모를 커다란 감정을, 오롯이 삼키고는 잔잔해질 때까지 다스리곤 했다. 내가 엄마답지 않은 엄마인 것 같아서.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서. 나는 자책했었다.


그런데 나의 엄마도 삼시세끼 지어 먹이는 일이 지겹다고 한다. 솔직하게 말해준 엄마가 고마웠다. 말하지 않았다면 엄마의 수고를 짐작만 하다가 또 잊어버렸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다 아는 동지가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엄마도 그랬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하고.


집에 돌아가면 설거지라도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정에 가면 설거지를 한다. 엄마가 지어준 밥을 꼭꼭 감사히 씹어 먹으며, 내가 편히 먹고 자란 모든 것이 엄마의 노동이라는 걸 꼭꼭 실감하며. 설거지라도 내가 하려고 손을 걷어붙인다. 친정에서라도 푹 쉬고 가라며 만류하는 엄마에게 “엄마 이제 그만해. 앉아서 좀 쉬어.” 괜히 부루퉁하게 쏘아붙이고는 설거지를 한다. 엄마의 수고로움을, 엄마의 지겨움을 그렇게라도 나누고 싶었다.  


지하철 차창으로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거기 엄마와 꼭 닮은 여자 하나가 흔들리며 서 있었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자 또 누군가, 그 자신일 한 사람.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갈까. 엄마는 어떤 얼굴로 살아왔을까. 사실 어느 것 하나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힘겹다. 하지만 반드시 잘 해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나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최선을 다해 해내고 있는 거니까. 엄마도 그랬다는 걸, 그렇게 나를 키웠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이상하지. 나도 엄마가 속상해. 그리고 고마워. 아등바등 애쓰며 살면서도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나는 평생 엄마를 고마워할 거야. 밥 꼭 챙겨 먹고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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