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인가 보다. 요 며칠 예고 없는 비를 자주 만났다. 하루는 우산도 없이 소나기를 만나서 지하철역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번쩍이고 땅바닥을 뚫을 듯한 세찬 비가 쏟아졌다. 누가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역사 처마 밑에 모여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빼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쏴아아아. 비가 쏟아진다. 망연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 혼자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유년시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제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였다. 하굣길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 미처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은 교실에서 놀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엄마들이 하나둘 우산을 들고 데리러 왔다. 누구야. 엄마! 반가움과 애틋함이 오가고 그렇게 모두들 떠나고 나면 나만 달랑 남았다. 나는 야무지게 책가방을 앞으로 고쳐 메고 학교를 나섰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적이 없다. 어렸을 땐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했었고, 아홉 살 때 큰 학교로 전학을 가고 나서야 우리 엄마가 좀 특이한 거란 걸 알았다. 반 아이들이 엄마와 우산을 나눠 쓰거나 차를 타고 떠나갈 때, 처음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오려나? 내심 기대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고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나는 비를 쫄딱 맞고 집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집에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디오에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엄마는 우아한 여배우처럼 커피잔을 들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딸, 비는 잘 맞고 왔니?”
세상에. 엄마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비 맞으면서 걸으니까 어때? 정말 좋지 않니? 물웅덩이도 생겼던? 신나게 놀다 왔어? 있지, 사람도 식물 같아서 햇볕도 쬐고 비도 맞고 눈도 맞아야 쑥쑥 자란단다. 비 맞는 게 싫으면 미리 우산을 챙겨가렴.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였다. 나는 엄마 덕분에 해마다 내리는 비도 눈도 펑펑 맞으며 초원의 풀처럼 자랐다.
언젠가 가수 이적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내 이야기 같아서 공감했던 말이 있다.
"초등학교 때 비가 오면 교문 앞에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잖아요. 저희 엄마는 한 번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적이 없어요. 그러면 제 반응은 "울 엄마 안 와? 서럽네"가 아니라 "울 엄마 멋있다"였어요. 어찌 보면 저희 모자가 같은 ‘과'인데, 저는 엄마가 저를 애가 아니라 독립적인 어른으로 존중했다고 느꼈어요. 그래, 이왕 젖은 거 흙바닥에서 신나게 놀자 했죠. 그게 지금껏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우산은 물론이고. 자라는 동안 엄마가 준비물을 대신 챙겨준다거나 숙제를 도와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따로 장난감을 사준 적도 없었다. 학교 통장에 저축할 돈도, 군것질도 장난감도. 모두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 네 용돈에서 알아서 아껴 쓰라 했다.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오천 원짜리 바비 인형을 사고 싶어서 오 개월 동안 문방구 앞을 서성이다가 용돈을 모아 사기도 했다. 나의 유일한 인형이었다.
그랬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몫의 삶을 야무지게 살았다. 어린애가 혼자 한 것들이니 당연히 잘하거나 멋지거나 풍족하거나 완벽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내 것을 만들고 이루었다는 성취감은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다른 아이들이 부러울 때도 더러 있었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웃음이 났다. 지금도 동생이랑 이야기하곤 한다. “역시나 우리 엄마답다”고. 엄마는 넉넉지 않은 궂은 삶을 살아내면서도 자기만의 기품과 고집을 간직하며 살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라면서 수십 번도 더 우산 없이 비를 맞았다. 어릴 때는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 놀았다. 비를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흙탕물을 첨벙거리며 뛰어다녔다. 중고등학생 때는 비만 오면 호다닥 달려 나가 비를 맞다가 교실로 돌아왔다. 대학생 때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다가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는 로맨스를 만나기도 했다. 눈이 와도 마찬가지였다. 별로 이상할 것 없었다. 나에게 비와 눈은 맞는 것이 아니라 만지는 거였으니까.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하루가 있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일곱 살의 나. 그때 나는 겨우 네 가구가 전부인, 버스가 하루에 딱 한 번 들어오는 산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집까지 어린이 걸음으로 삼십 분이 넘는 거리였지만 혼자서도 거뜬히 걸어 다녔다.
여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곱 살의 나는 비를 맞으며 혼자 흙길을 걸었다. 사방에 숲이 우거져 있고 길가로 작은 개울이 흘렀다. 개울이 흐르는 소리와 흐르는 물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이파리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튀어 올라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나는 물웅덩이를 찰방찰방 밟으며 손바닥에 떨어지는 비를 만지며 걸었다.
종종 발 앞에 조그만 개구리가 나타났다. 진갈색이기도 했고 연두색이기도 했다. 개구리의 걸음에 멈춰 섰다가 따라 걷다가 폴짝, 헤어지곤 했다. 걷다가 금방 또 멈춰 서서, 비에 젖은 꽃이나 풀, 돌멩이나 달팽이 같은 것들을 빤히 보다가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걸었다.
나무 아래를 걸으면 빗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졌다. 토독. 토도독. 떨어지는 비를 맞을 때마다 마음에 고인 무언가 일렁이며 잔잔히 퍼져 나갔다. 혼자인 어린 나는, 조금 외롭고 쓸쓸하고 어쩐지 슬프기도 했지만 행복했다. 뭉클함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아이 혼자 걸어 다녀도 안심할 수 있고, 깨끗한 비가 내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감사하게도 그런 시절을 살았던 나는 아주 소중한 선물을 간직하듯, 훗날에도 자주 그날을 꺼내어 본다. 일곱 살의 나는 비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혼자의 완전함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