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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26. 2015

일요일의 희망

한 줄 현으로 삶을 연주할, 모든 이들의 일요일


지구처럼 생긴 구 한가운데에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얇고 허름한 옷차림의 소녀는 맨발입니다. 어딘가 헤매고 다녔을까요. 흙투성이 발이 누추합니다. 소녀는 하얀 천으로 두 눈을 가렸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매달리듯 리라에 기대어 있습니다. 리라를 꽈악 붙들고 있는 소녀의 왼손이 보이시나요. 소녀가 간절히 끌어안은 리라는 줄이 거의 끊어졌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겨우 한 줄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녀는 오른손으로 한 줄의 현이 남은 리라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귀를 바짝 붙이고 한 줄의 현이 연주하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굳게 입술을 다문 소녀의 얼굴이 담담합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희망’입니다.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와츠(George Frederick Watts)가 그린 <Hope>라는 그림입니다. 음울한 분위기와 소녀의 상황은 도무지 '희망'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 비참함으로 하루를 흘려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감정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훨씬 민감하니까요. 아픔, 절망, 슬픔 같은 것들이 어울릴 법한 우리의 생生의 모습을, 과거의 어떤 화가는 ‘희망’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은 이처럼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모두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그것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낡은 리라에 기대어 한 줄 현으로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입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한 줄 현으로 삶을 연주할 모든 지친 이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만두지 말라고. 희망이 무너져도 죽지 말라고. 헤르만 헤세의 글도 함께 전해주고 싶습니다. 


신은 우리를 죽이기 위하여 절망을 보내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새로운 삶을 일깨우기 위하여 절망을 보낸다.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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