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있는 곳에 아직 가보질 못했어. 지금 이 자리가 나로서는 너희에게 가장 가까운 곳까지 발걸음을 한 거란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어. 나는 너희에게 할 말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부끄러운 사람일 뿐이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한 해가 가고 오백일이 지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격이라는 말이 어떤 자물쇠로 변해가는 걸 느꼈어. 너희는 배 안에서 그토록 나가고 싶었을 텐데. 누구든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제발 와 주기를 그토록 기다렸을 텐데. 물이 아닌 뭍에서 바보처럼 또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자물쇠를 채운 사람으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어.
몇 번인가 거리에 서 계신 너희 부모님들을 지나친 적이 있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한 번은 짧은 편지를 써 건네기도 했어. ‘사람들이 다 잊었다고 세상이 다 버렸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처럼 송구하고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손이라도 꼭 잡아드리려 했는데 역시 눈조차 맞출 수가 없었어. 죄송했어. 죄송하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는 얼마나 가벼운지 알면서도 죄송할 수밖에 없었어.
나는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란다.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우리는 나른한 주말 오후에 어린이 놀이터 그네 앞에서 마주쳤을지도 몰라. 너희는 어린 동생이나 조카를 데리고, 나는 내 아이를 데리고 한껏 졸린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야. 우리는 어쩌면 같은 버스를 탈 수도 있었을 거야. 아직 버스에서 중심을 못 잡는 아이를 데리고 쩔쩔매는 내게 선뜻 자리를 양보해주는 건 어른들이 아니라 언제나 너희 같은 고등학생들이었어. 너희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가방은 무겁고 시험공부하느라 피곤해 지쳤는데 조그만 아이와 나 같은 서툰 엄마를 보면 얼른 일어나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았을까.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게 몇 가지 있단다. 아이들은 단지 아무것도 몰라서 맑고 밝게 웃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더구나. 반대로 매 순간 어른들의 어리석음과 욕심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끄러운 소음들에 실망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거더구나.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욕을 하고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그냥 모르는 척한다는 걸 알았어.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실은 너무도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뛰어넘고, 다만 어른들보다 한결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웃어주는 것으로 그 실망을 이겨내려 한다는 걸 말이야.
너희가 우리에게 얼마나 실망했을지를 생각해. 설마 우리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너희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계속 믿으려 했을 거야. 기다렸을 거야. 이렇게 끔찍한 우리를 말이야.
너희가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외로웠을지를 생각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고 또 어렵지만. 너희는 살았어야 했어. 살아서 진심 어린 사과를, 위로를, 다시는 이렇게 놀라게 해 드리는 일이 없을 거라는 약속을 받았어야 했어. 따뜻한 차를 대접받았어야 했어. 다시는 춥지 않게 따뜻한 모포를 몸에 두르고 너희와 너희 부모님들 선생님들 친구들 모두 배려와 존중을 받으며 3학년이 되었어야 했어. 졸업을 하고 꽃다발을 받고 함박웃음을 짓고 대학에 가고 소개팅을 하고 첫 출근을 하고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리고 꿈을 이루고 너희 것인 삶의 모든 빛과 향기를 온전히 경험했어야 했어.
이렇게 무참하고 어리석은 나라에서 일지언정, 너희가 태어났다는 것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열심히 자라주었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희망이었는지 알았어야 했고 들었어야 했어. 설령 슬픔이나 실패나 좌절을 겪더라도 온전히 주어진 너희 몫의 삶을 충분히 살다가, 너희 자신의 방식으로 겪었어야 했어. 그럴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해서 너희를 아직 집으로 다 돌아오게 해 주지조차 못해서 나는 이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여기에 서 있구나.
할 수 있는 게 이런 말 뿐이라는 게 슬프지만 조금만 더 말해볼게. SNS에 너희들 생일 알림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사진들을 유심히 보곤 해. 너희의 아기 때 모습과 내 아이의 지금은 참 많이 닮았어. 내가 우리 집 꼬마에게 그러는 것처럼 너희 부모님도 매일 백번이고 천 번이고 너희를 만지고 쓰다듬으며 하루하루 살아오셨겠지. 어린 너희 손을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잡고 다니셨겠지. 힘들고 지쳐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더라도 너희의 보드라운 볼 감촉 한 번, 웃음 한 자락에 거뜬히 일어나 또 하루를 사셨겠지. 첫 옹알이, 첫 번째로 터져 나온 말, 뒤뚱뒤뚱 내디딘 너희의 첫 번째 걸음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겠지.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너희의 어떤 부분은 이미 내 아이 안에 있단다. 내 아이도 자라면 너희처럼 농구를 하고 문제집을 풀고 컵라면을 좋아하게 되겠지. 너희가 가끔 그랬듯 친구들과 다퉜다가 눈물 쏙 빼며 화해하고 몰래 숨겨놓고 야한 만화책을 보고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고 베이비 로션 향기를 풍기며 사물함에 책들을 집어넣게 되겠지. 내 아이를 보며 너희를 떠올리곤 해. 열 번의 아홉 번은 못 돼도 네 번 다섯 번은 저절로 떠오른단다. 우리의 시공간이 이렇게 이어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저 자연스레 겹쳐 보이는 거란다.
나는 너희 부모님들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 없어. 하지만 내 아이의 키가 하루하루 커지고 팔다리가 길어지는 한, 그 몸에서 너희를 보지 않고 엄마로서 살기는 어려울 것임을 알아. 너희 부모님들께 이 말만은 해드리고 싶었어. 내가 계속 생각하게 될 거라고. 보이니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이야.
나와 내 가족은 여기 있는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너희는 왜 지금 이곳에 없는지. 그럼에도 모두의 삶이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아이가 너희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지. 살아남은 우리가 이 악과 부조리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기도해. 상처 받아야 할 것에 상처 받고, 분노해 마땅한 것에 처음처럼 분노할 수 있기를. 다만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 이 이상한 세상에서 사람이자 어른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숙제라고, 시험이라고 생각할게.
내 아이가 자라 소풍을 가고 수학여행을 가야 할 때마다, 내가 아침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야 하는 날마다, 너희가 가려했던 제주도를 언젠가 찾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너희처럼 교복을 맞춰 입은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피하고 싶을 테지만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볼 거란다. 내 아이 몸에 겹쳐진 너희를.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렴. 계속 묻고 이야기할게.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들을 거야. 너희가 살았어야 했던 미래에 대한 대답을.
세월호 4주기때 윤이형 소설가가 낭독한 <가까이로 띄우는 편지> 전문.2018년 4월 19일 <요조의 세상에 이런 책이>에 업로드 된 오디오 클립을 듣고 옮겨적은 글입니다. 저는 이 오디오 클립을 들었을 때 조금 울었는데요. 옮겨 적으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