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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30. 2019

쓰고 읽고 나누는 삶에 감사

<인생 스케치북 프로젝트>에서 만난 나의 인생 선배들

1.


60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예술교육, <인생 스케치북 프로젝트> 강연에 다녀왔다. 나는 앞으로 3주간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글쓰기를 도와 인생책 만들기를 함께할 예정.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에도 삼삼오오 내 곁에 모여 글쓰기에 대해 물어보셨다.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도 질문하러 오셨다) 이렇게나 열정과 질문이 넘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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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넘었지만 틈틈이 수필을 쓰셨다는 할머니, 나눠드린 읽기자료에 줄 긋고 동그라미를 치며 '마음'과 '감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할아버지, 내 책을 펼쳐보시며 '이게 고수리 작가 책 이래' 책 제목을 적으며 속삭이는 할머니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가 좋아했던 배추전을 만들어 먹는다는 할머니 이야기에 나는 또 뭉클.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더 배워간다. / 190522 기록



2.


<인생 스케치북 프로젝트> 두 번째 글쓰기 시간. 이번 주에는 일주일 동안 써 온 글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주부터 손자 이야기만 꺼내면 우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손자에게 손편지를 써오셨는데, "나는 너를..." 첫 문장을 읽으신 순간부터 우셨다. 감정이 북받쳐서 목소리가 떨리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는 바람에 어떤 글을 읽으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낭독이 어려웠다. 나는 할머니가 끝까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기다려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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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12년 전에 아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손자를 아들처럼 키우셨다. 그 애에겐 할머니가 엄마인 셈이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가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붙잡아주고 이끌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어렵다고. 참견하거나 강압적으로 다그치고 싶진 않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까, 어떻게 더 사랑해줘야 할까, 하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손자를 지켜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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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였다. 이런 내용의 편지를, 할머니는 우시면서도 끝까지 읽으셨다. 박수가 쏟아졌다. "선생님, 감사해요. 끝까지 글을 읽으신 선생님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말씀드리는데 나도 눈물이 솟는 걸 꾸욱 참았다. 다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어르신들이기에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주셨다. 그 말들이 그저 그런 위로가 아니어서, 겪어본 마음에서 우러난 담담하고도 굳센 말들이어서, 나도 들으면서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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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마음속 응어리를 툭 털어내고 한결 후련해지셨는지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 나누다가 가셨다. 다음 글이 기대된다. 울고 난 말간 마음으로 할머니는 또 어떤 글들을 쓰실까. 오늘 같은 시간이야말로 함께 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감사. 쓰고 읽고 나누는 삶에 오늘도 감사한다. / 190529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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