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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13. 2019

응급실에서

귀히 여기고 고마워해야 해, 생명을

잊지 못할 추석 전야를 보냈다. 서안이 갑자기 아파서 한밤중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픈 사람이 많았다. 절반은 아이들이었다. 소아 응급 센터는 대기실까지 꽉 차 있어서 나는 서안을 안고 응급실 복도에서 기다렸다. 중증 응급 센터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많은 사람을 마주쳤다.

경기를 일으키며 우는 아기를 안고 어쩔 줄 모르는 엄마, 의식을 잃거나 피를 흘리며 실려온 환자들, 울면서 부축받으며 걸어가는 보호자들, 얼빠진 얼굴로 달려와 누군가를 찾는 사람들, 피곤한 얼굴로 스쳐가는 의료진들. 비현실적인 풍경이 무섭고 겁이 나서 서안을 더 꽈악 안았다. 서안의 몸이 뜨거웠다.

두 시간쯤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며칠 앓을 거예요." 명랑한 여자 의사를 만났다. 현장에서 마주친 유일한 명랑함이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서안을 격리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해서 연휴 동안 지안은 시부모님께서 돌보기로 했다. 여전히 북적이는 응급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남들이 쉬는 날에, 자는 시간에 나와 일하는 의료진이 고마웠다. 그들은 점보 사이즈 커피를 링거병처럼 들고 마시며 잠과 병과 폭언과 싸우고 있었다. 술 취해 주먹다짐을 하다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온 남자는 의료진에게 줄곧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치료하던 의사와 간호사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런 생활이 일상일 그들의 밤을 상상했다.

짐을 챙겨 새벽에 서안과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밤새 앓았고 나는 자다 깨다 아이를 돌봤다. 눈을 뜨니 오전 열한 시. 좀 나아졌는지 서안이 내 눈을 마주 보며 생글 웃고 있었다. 둘이 밥을 지어먹었다. 둘 다 잘 먹지 못했다. 나도 그간 쌓인 피로와 긴장이 몰려와서인지 온몸이 아팠다. 서안 곁에 누워 더 잤다. 아프고 고요한 추석이었지만 평온했다. 이 아침이 오기까지 긴 밤이 지나갔다.

나중에 서안에게 말해주고 싶어 기록해둔다. 네가 세 살 때, 추석 전날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갔어. 너는 많이 아팠는데 너를 위해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수고해주었어. 그러니까 너는 고마워해야 해.

너는 앞으로 아프면서 자랄 거야. 엄마도 아프면서 늙을 거야. 사람은 가끔 아플 것이고, 죽을 때까지 아플 거야. 아플 때, 아픈 한 사람을 위해 잠들지 못하는 여러 사람이 있어. 그걸 잊으면 안 돼. 귀히 여기고 고마워해야 해. 생명을 지키려고 반짝이는 모든 존재들에게. 그렇게 지켜온 너라는 생명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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