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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19. 2019

창문을 열었다가 가을을 만났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잘 여문 바람이

아이들과 걷던 은행나무길. 아이들 손바닥 만했던 은행잎들이 손바닥 반만 하게 조그라 들고 바삭해졌다. 노랗게 바래지고 있었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온 가족이 아프다. 일주일 동안 기침과 열이 네 사람을 통과해갔다. 우리는 핼쑥해지고 풀썩 주저앉곤 했다. 바래지고 떨어지는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노랗게 물든다고 말한다.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에 창문을 열었다가 가을을 만났다. 가을바람은 뺨에 닿았다가 가슴 어디께로 휘요요 휘돌다 사라졌다. 좋아서 웃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잘 여문 바람이었다. 우리 가족도 다 나았다.

아이들 발이 손가락 한 마디쯤 커져서 새 운동화를 사주었다. 소매도 짧아져 새 옷을 사주었다. 이제 아침저녁에는 긴소매 옷을 입고 걸어야 한다. 머지않아 노란 은행잎이 이불처럼 깔린 길을 아이들과 손잡고 걸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우수수 떨어지고, 겨우내 마른 몸으로 웅크렸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돋아날 것이다. 그 사이 녀석들도 새롭게 자라 있을 테지. 이런 시간의 흐름이 당연하다는 거.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명은 참으로 경이롭다.




초가을 숲에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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