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걷던 은행나무길. 아이들 손바닥 만했던 은행잎들이 손바닥 반만 하게 조그라 들고 바삭해졌다. 노랗게 바래지고 있었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온 가족이 아프다. 일주일 동안 기침과 열이 네 사람을 통과해갔다. 우리는 핼쑥해지고 풀썩 주저앉곤 했다. 바래지고 떨어지는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노랗게 물든다고 말한다.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 오늘 아침에 창문을 열었다가 가을을 만났다. 가을바람은 뺨에 닿았다가 가슴 어디께로 휘요요 휘돌다 사라졌다. 좋아서 웃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잘 여문 바람이었다. 우리 가족도 다 나았다. ⠀ 아이들 발이 손가락 한 마디쯤 커져서 새 운동화를 사주었다. 소매도 짧아져 새 옷을 사주었다. 이제 아침저녁에는 긴소매 옷을 입고 걸어야 한다. 머지않아 노란 은행잎이 이불처럼 깔린 길을 아이들과 손잡고 걸을 것이다. ⠀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우수수 떨어지고, 겨우내 마른 몸으로 웅크렸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돋아날 것이다. 그 사이 녀석들도 새롭게 자라 있을 테지. 이런 시간의 흐름이 당연하다는 거.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명은 참으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