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말에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불현듯 마주친 어떤 위로
"엄마!"
스물 후반 어느 출근길, 급히 계단을 내려오다 마주친 아랫집 남자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나를 엄마로 잘못 본 것이다.
어린 고무나무만 한 작고 동그란 아이가 활짝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어나 누군가를 미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은 투명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도 내가 엄마가 아닌 걸 알고서도 아이는 앙글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살면서 무섭고 두려운 존재를 마주쳤을 때만 뒷걸음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아이 앞에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세상에 아름다운 존재를 마주쳤을 때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출근하던 젊은 나는 뭐가 그리 바빠서 초조했는지, 뭐가 그리 부루퉁해서 찌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 눈을 마주 보다가 불현듯 뭉클해져 나는 무언갈 다짐하듯 미소 지었던 것 같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 찍어준 사진처럼 선명하게 마주 선 아이와 나를 오래 간직하고 살았다.
아침에 두 아이 등원시키는 길. 아파트 현관에서 바닥 청소를 하는 할머니를 마주친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서안이 오늘은 그분 앞에 멈춰 서더니 "할머니!" 불렀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할머니는 대걸레질을 멈추고 아이고 예뻐라,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되어본 사람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떤 뭉클함이 서려있다.
현관문을 나오며 서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 서안아.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해줘. 언제고 그렇게 활짝 웃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