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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29. 2019

친구의 엄마와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친구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점란님은 나의 14년 지기 친구의 어머님이시다. 고유글방 첫 시간에 유독 긴장했던 건, 나의 절친한 친구의 어머님이 내 앞에 앉아계시기 때문이었다.


점란님은 긴장한 모습으로 글방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고 처음 글을 써 본다며 걱정하는 학인. 그녀를 티 나지 않게 잘 챙겨야 하고, 그녀 앞에서 쑥스럽지만 쑥스럽지 않게 수업을 이끌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친구 어머님을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부담과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처음 글을 써 본다는 점란님은 꾸밈없는데 재밌고, 담백한데 감동적인 글로 항상 우리를 놀래켜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연필로 써 내려간 점란님의 글을 학인들은 너무 좋아서 사진 찍어가곤 했다. 나는 진지하게 아동문학을 공부해보기를 권유드렸다.


예순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살아온 삶이, 실은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고유글방에서 그녀는 상냥하고 사려 깊으며 따스하고 현명한 연륜을 지닌 어른이었다. 이런 어른을 만나 친구가 되는 일은 더없는 행운임을 안다.

마지막 날 점란님은 사과대추 몇 알을 싸가지고 와 나눠주었다. 우리는 동그란 열매를 먹으며 글을 나누었다. 수업을 마치기 전, 점란님이 노래 가사를 읊조렸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이 가을에 나도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문방구를 다니면서 편지지를 여러 개 샀어요. 하지만 마땅히 보낼 사람이 없어서 서랍에만 넣어두었죠. 그런데 오늘 편지지에 내 이야기를 쓰면서 알았어. 아, 나는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구나 하고. 아무래도 여기가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동화에서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옷장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여기가 그런 곳이에요.


매번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여기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여운이 길어서 잘 때까지 생각이 났어. 한 달 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이 되었어요. 지하철에서 뭘 쓸까 생각하다가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하늘을 보다가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렇게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은 헤어지지만, 나는 가끔 여러분을 생각할 거예요. 생각하면서 응원할 거야. 한 사람 한 사람 안아주고 싶어. 정말 그럴 거야."

모두를 울게 한 점란님의 말. 훌쩍이며 웃으며. 서로 안아주고 또 안아주고. 아주 이상하고 행복한 얼굴로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나의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친구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우리는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정말 그럴 거야.


고유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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