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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r 18. 2022

우리는 할머니가 될 수 있어

희우 <당연한 하루는 없다>

나의 새 삶은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았다고.
더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고.


2019년 12월에 희우가 찾아왔다. 창비학당에서 <고유한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이끌 때였는데, 첫 수업이 끝나고 희우에게서 질문 폭탄 메일을 받았다. 난감했다. 글쓰기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거라고. 꾸준히 마음으로 쓰다보면 나다운 글을 쓸 수 있게 된다고. 이 뜨거운 사람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희우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이 아팠고, 아픈 몸으로 껴안기에 꿈과 희망과 야망이 너무나 큰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오랫동안 글로 교우했다. 희우는 내 글쓰기 수업마다 찾아왔고, 그래서 나는 희우의 글을 처음부터 읽어온 첫독자이자 글쓰기 선생님이 되었다.  


<당연한 하루는 없다>라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우리 사이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겨우 한 페이지에 다 쓸 수가 없다. 몽땅 필사하고 싶었을 정도로 좋았던 <당연한 하루는 없다>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내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도 다 쓸 수가 없다. 책을 쓰는 사이 희우는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받았고 천천히 회복하며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희우는 이제 마음으로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 아픈 몸과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견디고 애쓰고 글 썼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말한다. 당연한 하루는 없다. 당연하지 않은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가라고. 언젠가 희우가 <유원> 같은 성장소설을 써줬으면 좋겠다.


2021년 2월 24일에 희우가 보낸 '새살이 돋아난 자리(189p)'라는 글에 답장으로 보냈던 편지를, 이제 희우의 책을 읽고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을 독자들에게도 보내주고 싶다.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묻던 희우에게 대답한다. 우리는 할머니가 될 수 있어. 나랑 같이 글 쓰는 할머니가 됩시다.





희우에게, 아프더라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 희우를 오래 지켜봐 왔고, 먼저 글을 쓰고 있는 작가로서 희우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긴긴 시간 병과 고통과 함께 살다가, 다시 태어난 희우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희우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요. 회복하면서도 동시에 성장하고 싶어서 지금 초조하겠지요.


희우의 글은 무척 좋아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글쓰기의 질의응답을 메일 한 가득 적어 보내던 희우의 글이 단시간에 이렇게나 좋아지다니. 그만큼 많이 쓰고 노력했기 때문일 거예요. 글쓰기는 요령이 없기 때문에 쓰는 만큼 늘거든요. 부지런한 글쓰기가 여기까지 성장한 거예요.


희우의 이 글들이 세상 밖에 널리 알려진다면 좋은 일들이 이어질 거예요. 책이 많이 팔릴 수도 있고, 작가로 계속 활동할 수도 있고, 더 많은 글쓰기 기회와 새로운 만남들이 이어지겠지요. 단언컨대 희우는 앞으로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더 예뻐지고 더 멋져질 테고요. 어쩐지 나는 이미 그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아요. 그 미래를 위해서, 우리 지금은 초조하고 조급하지만, 일상의 회복과 글쓰기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요. 절대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움츠러지지 말고요.


아마도 지금의 희우에게 필요한 건 확신이 아닐까요. 잘 쓰고 있다는 확신, 잘 해내고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을 글쓰기 선생님인 제가 드릴게요. 그러니 불안해하거나 의심치 말고요. 온 힘을 다해 쓰고 있는 내 삶의 한 시기를, 이야기를,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기록해보아요.


희우의 마음과 같을 문장을 발견해서 선물로 보내요. 이미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옴’이라는 벌레처럼 생긴 불행을 먹어 없애는 운명으로 몇 백 년간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 ‘옴잡이’가 위 절제 수술을 마치고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그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런 생각을 해요. 희우의 마음도 점점 어려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되면 되지, 이제부터 하면 되지 하고 응원 받았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얼떨떨한 상태에서 오래된 옴잡이의 마음이 점점 어려졌다.

-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p222



긴긴 시간 고생했어요. 안아주는 마음을 보냅니다.



희우 작가의 글, 오래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hee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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