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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0. 2015

목요일의 유기묘

버려진 고양이를 발견한, 목요일 새벽 한 시

우리 부부는 야간산책을 즐긴다. 특히나 밤바람이 선선한 여름에는 야간산책을 하기에 딱 좋다. 간밤에도 우리 부부는 산책을 나섰다. 십 여분쯤 걸었을까. 대로변에서 술에 취한 아저씨가 고양이 한 마리랑 놀고 있었다.


“너 이 시간에 왜 여기 나와 있어? 요놈, 이~쁘게 생겼네. 어라? 너 인마 길고양이 아니구만. 누가 너 여기 다 버렸어? 응? 왜 여기 있어?”


아저씨는 고양이를 아기처럼 껴안고 하소연인지 우쭈쭈인지 모를 말들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자세히 보았다. 아직 어린 태가 남아있는 얼굴에 치즈 얼룩이 박힌 미묘였다. 털도 깨끗했고 울거나 바둥거리지도 않는 순둥이 었다.


“오빠, 고양이가 어린 거 같아.”

“그러게. 청소년쯤 돼 보이는데?”

“길고양이는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누가 버린 건가.”


우리 부부는 아저씨와 고양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걸었다. 나는 자꾸만 고양이가 맘에 걸렸다.


“오빠, 우리 아까 그 길로 가볼래?”

“고양이 땜에 그러지? 설마 아직 거기 있겠어?”


빠른 걸음으로 아까 왔던 길을 다시 갔다. 대로변 얕은 수풀 속에 아까 그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도 있네. 얘, 정말 누가 버렸나 봐. 어떡하니. 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을 뻗었다. 고양이를 살짝 쓰다듬으니 고양이가 새초롬히 눈을 떴다. 녀석은 일어나더니 나에게 파고들었다. 내 곁을 부비적 거리며 두 바퀴 빙 돌다가, 내 발등에 뒷머리를 대고 애교를 부렸다. 예쁜 고양이였다. 털도 깨끗하고 사람도 가리지 않는 걸 보니, 사람 손에 큰 고양이가 분명했다.


고양이 곁에는 누군가 잘라 주고 간 소시지 토막들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하나도 먹질 않았다. 코 앞에 소시지를 놓아줘도 관심이 없었다. 배가 부른가? 그때, 남편이 소시지를 조그맣게 잘라서 입가에 갖다 대 주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허겁지겁 소시지를 먹었다.


근데 얘, 눈이 안 보이는 거 같아.


남편이 말했다.


“왜?”

“고양이들은 원래 손을 저으면 고개를 따라오거나, 아예 피해버리거나 뭐라도 반응을 하잖아. 근데 얘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밥도 안 보여서 못 집어 먹는 거 같아.”


설마. 나는 고양이의 코 앞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았다. 녀석은 피하지도 않고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방 한 마리가 눈앞에서 치근덕댈 때도, 녀석은 가만히만 있었다. 남편이 휴대폰 플래시를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았다. 고양이는 더딘 반응으로 아주 살짝 고개를 피했다. 빛 정도는 조금 감지하지만,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상상해봤다. 기르던 어린 고양이가 어느 날부턴가 이상해졌다. 주인을 따라 보지도 않고, 밥을 잘 먹지도 않고, 한 곳에만 가만히 머물러 있고. 이상하게 생각한 주인은 병원에 고양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고양이가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장애가 있는 고양이라. 주인은 더는 고양이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 인적이 드문 야심한 밤, 주인은 왕복 6차선 도로에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고 차들이 오가는 대로변 수풀에 고양이를 버리고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는 그 자리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고양이는 자신이 버려진 것도, 주인이 가버린 것도 알지 못한다.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더 나쁜 생각들만 자꾸 떠올랐다.


고양이가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풀잎을 뜯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정말로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저 녀석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아,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나. 우리 부부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는 고양이를 키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단칸방에 사는 자유로운 솔로였다면 겁도 없이 이 녀석을 데리고 갔을 거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함부로 어떤 생명을 책임지기엔 환경도 시기도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보호소나 유기묘센터 같은 데 없나? 그런 데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보호소를 찾았다. 하지만 기관에 신고해서 보호소에 간 유기묘들은 열흘도 채 안 되어 병에 걸려 죽거나 안락사를 당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만 접했다. 대부분 냥이 집사들은 단호히 일러줬다.


보호소에 가는 건 고양이에게 더 큰 불행입니다.
안타깝지만, 책임지지 못 할 거라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가 주세요.


내가 데려가서 잠시 녀석을 챙겨주고, 고양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입양을 보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눈도 보이지 않는 유기묘를 입양할 사람이 있을까. 입양을 가지 못하면 내가 녀석을 책임져야 할 텐데, 솔직히 나는 평생 이 아이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겁이 덜컥 났다. 어휴, 어떡한담. 우리 부부는 거의 삼십 분을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아 고민했다.


그 사이, 배부르고 기분이 좋아진 고양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우리는 혹시라도 고양이가 차도 쪽으로 걸어갈까 봐, 수풀로 자리를 막아주고 남아있는 먹이를 잘게 쪼개서 앞에 놓아주었다. 잠든 고양이를 두고서 우리는 일어났다.


“발길이 안 떨어지네.”

“미안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돌아와서도 고양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잠들기 전까지 유기묘를 맡길 만한 곳을 찾아봐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고양이 생각만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 꿈을 꿨다. 고양이가 6차선 대로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차들이 씽씽 오갔다. 고양이가 야옹야옹 울었다.


잠에서 깨자 무거운 죄책감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고양이를 데려오지 못한 마음이 몹시도 무거웠다. 생명이란 게 이렇게 나약하고 또 위태로운 거구나. 이렇게 무겁구나. 고양이를 쓰다듬었던 손바닥에 찌르르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날이 밝고 오전 일정을 마친 점심시간, 나는 서둘러 다시 고양이를 만났던 그 장소로 갔다. 대낮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라도 널 만나지 않았을까. 나는 맘이 급했다.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그곳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간밤에 고양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들어가 있던 수풀은 둥근 형태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놓아준 먹이들이 종류별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먹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혹시 차도에서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나는 블록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차도와 대로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청소를 하고 계셨다.


“아저씨, 혹시 오늘 고양이가 차에 치이거나, 고양이 사체 발견했다거나. 그런 일 없었죠?”

“뭐? 그런 일 없었는데?”


별안간 꺼낸 고양이 사체 얘기에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저씨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제발, 마음씨 착한 누군가가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잔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손바닥으로 땀을 훔쳐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자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미안함과 죄책감, 안도감과 슬픔. 그런 감정들이 털 뭉치처럼 잔뜩 꼬여 마음속에 떼구루루 굴러다녔다. 비둘기들이 쫑쫑 쪼아대는 고양이의 빈자리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괜찮으니 살아만 있어 주렴.



나는 간절히 바랐다.   





+) 배경 사진의 고양이는 그 고양이가 아닙니다. 유기묘를 발견했다고 게시글을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두긴 했지만, 이곳에 올리진 않았어요. 제발, 그 예쁜 녀석이 살아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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