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바쁘시군요. 아직 여유 있으니 살펴보고 회신 주세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라는 메일을 받았다. 작업 일정이 빠듯해 시작하길 미루다 보니 무려 6개월이나 나를 기다려준 작업 담당자가 건네준 말이었다.
지난 2주는 집에 독감이 돌아서 아이들도 남편도 차례차례 크게 앓았다. 가족들 돌보면서 틈틈이 밤과 새벽에 작업을 이어갔는데도 나만 멀쩡했다. 이상하다 좀 억울하다 엄마만 안 아파 우스갯소리를 하던 어제서야 핑 감기 기운이 돌았다. 다행히 약 먹고 푹 잤더니 나아져서 새벽에 일어나 작업했다.
1월과 2월, 일곱 편의 기고문을 썼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두 가지 큰 프로젝트를 작업 중이고, 매주 2시간씩 대학 강의를 촬영한다. 오늘 새벽에는 강의 10강 교안을 완성했다. 그간 강의 교안만 213쪽 47,864개의 낱말을 썼다. 잊지 않고 일기도 기록한다. 이보다 명백한 성실함의 지표가 있을까. 성실하게 일군 성취에 자부심을 느낀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 내 성취에 대한 만족이기에 뿌듯함보다 대견함이 크다. 내가 해내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고 애쓰는 돌봄과 작업.
"아이를 키우며 영화를 만드는 일. 제게는 한 가지 해결책 밖에 없고, 그건 바로 '슈퍼우먼'이 되어 한 번에 몇 가지 삶을 동시에 사는 거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게 그거죠. 한번에 몇 개의 삶을 살면서 포기하지도, 그중 어느 것도 버리지 않는 거요. 아이들도, 영화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라던 아녜스 바르다의 말. 위트와 애정 넘치고 예술적 영감이 자유롭게 빛나 보이던 그도 치열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인데 나는 왜 영화랑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는 거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걱정했는데요. 돌아보니 아이들 키우던 10년 동안은 영화 한 편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시간조차 저에겐 없었더라고요." 여둘톡에서 들었던 정서경 작가의 말도 떠오른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상충하거나 무관한 말 같지만, 둘 다 우리 삶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들이고 둘 다 창조성의 영역에 속한다. (...)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정지되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나다운 것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침범당하며 너와 뒤섞이는 와중에 만들어진다. 진짜 창조물은 머리만이 아니라 손발과 팔다리로, 마음과 오장육부를 거쳐 만들어진다. - <돌봄과 작업> 18p
한 번에 몇 개의 삶을 살면서 그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는 삶이 진정 욕심인 걸까. 유독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요구되는 곤란한 선택지는 아닐까. 이 삶, 어쩌면 열정적으로 예술하는 삶 아닐까. 예술하고 싶다면, 자기만의 무언갈 만들고 싶다면 포기보다 돌파를 택해야 한다.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나 말고도 타인도 돌볼 줄 알고, 부지런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세상을 두루두루 살피고 살아봐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포함하여 매일 꿋꿋하게 돌봄과 작업을 해내는 이들에게 '좀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말할 것이 아니라 '잘하고 있어' 몸과 마음 잘 챙기라고 등 두드려주면 좋겠다. 훗날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나의 무모함과 억척스러움이 떳떳하게 사랑스러울 걸 안다. 꿋꿋과 떳떳. 지금 나에게 주고 싶은 씩씩하게 귀여운 다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