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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15. 2015

오미래

우리 미래 1. 취준생 오미래의 하루

꽃샘추위는 도무지 풀릴 생각이 없었다. 3월 중순인데도 하얗게 입김이 서렸다. 그녀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색조 없는 수수한 화장에 연핑크 립스틱이 전부, 도화지에 눈코입만 그려 넣은 듯 그녀는 밍밍한 얼굴이었다. 유난히 파리한 얼굴색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얼굴은 누구와도 쉽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흐릿했다. 잔머리 없이 넘긴 머리는 돌돌 틀어 올려 깔끔하게 묶었다. 코트 깃 사이로 언뜻 보이는 화이트 셔츠, 카라가 목까지 채워져 있었다. 종아리를 덮는 검은 롱코트는 라인도 없이 그냥 툭 떨어져 있었고, 펑퍼짐한 코트 자락 아래로 드러난 맨다리는 몹시도 추워 보였다.


그녀는 코트 깃을 세우고 어깨를 움츠렸다. 종종 그녀 앞에 하얀 입김이 신기루처럼 머물다간 사라졌다.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떨군 그녀는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구두코를 콩콩 찧으며 전철을 기다리는 그녀, 미래였다.


미래는 취준생이었다. 지방에서 간신히 인서울했지만, 그리 유명하진 않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다. 무난한 영문과를 전공했지만, 토익은 겨우 850점을 넘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엔 모호한 성적이라 학교 앞에서 여섯 번 방을 바꿔 살았고, 다섯 번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미래네 집은 가난했다. 그래서 미래는 알바의 여신이 됐다. 평일에는 서빙 알바를, 주말에는 예식장 도우미 알바를 했다. 등록금을 제외하고 그나마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다.


미래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정의와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인 대학생을 꿈꿨던 미래는, 모토가 ‘정의와 진리의 소리’인 학보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알바 때문에 활동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미래는 기사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학보사를 나와야 했다. 그로써 학보사는 단 두 명의 사원만이 남게 됐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친 미래는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반년은 종일 투잡을 뛰어서 돈을 벌었고, 또 남은 반년은 번 돈으로 필리핀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하지만 똑뚜미 똑뚜미. 된소리투성이 필리핀 원어민 발음만 배워온 미래는, 영어회화에 능숙하지 못했다. 오히려 종로 족집게 강사의 비싼 수업을 듣고 나서야 턱걸이로 토스를 땄다. 130점, 레벨 6였다. 토익과 토스. 미래는 영어시험 접수비로만 100만 원을 훌쩍 날렸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미래는 한 학기 졸업유예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만 20개의 자소서를 썼다. 면접에선 절대루 가난한 티를 내믄 안돼. 지방에서 식당 주방일을 전전하던 미래네 엄마는 무리해서 70만 원짜리 면접용 정장을 장만해줬다. 하지만 20개의 자소서 모두 1차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정장은 입어볼 기회도 없이 눅눅한 옷장에 걸려있었다. 야속한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결국, 지난달, 미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야 말았다. 학점 3.8 미래의 조용한 퇴장이었다. 졸업식엔 가지 못했다.   


시간과 빚으로 만들어진 130점이거나 850점, 혹은 3.8점짜리 우리 미래



오늘 아침이었다. 미래는 작년 여름에 산 정장을 처음 꺼내 입었다. 70만 원짜리 정장은 반지하 방에서 눅눅하게 묵어 있었다. 미래는 헤어드라이어로 정장을 말리면서 꿉꿉한 마음을 달랬다.


맨발의 미래. 얼음장 같은 방바닥은 잠시만 서 있어도 발가락이 알알하게 시렸다. 미래는 얼른 스타킹을 신고서 발레리나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섰다. 그 채로 차가운 방바닥을 콩콩 걸어 다녔다. 여름에 산 얇은 정장은 그나마도 헐렁해져 있었다. 미래는 그새 많이 여위었다. 치마허리 부분을 옷핀으로 고정하고 위에 재킷까지 완벽하게 입었다. 미래는 빳빳한 재킷 앞섶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가난한 엄마가 사준 값비싼 정장. 맨들맨들한 감촉이 낯설었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손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묶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스펙 쌓고 집세 내고 그나마도 굶다가 라면만 사 먹는데도 돈이 바닥났다. 배고팠다. 안 돼, 울면 화장 다 번져. 미래는 마스카라를 칠한 속눈썹을 깜박이고 다시 손거울을 쳐다봤다. 빙그레 웃어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제 얼굴이 어색했다. 준비를 마치고 믹스커피 한 잔으로 배를 채운 미래는 5센티 면접용 펌프스에 몸을 싣고 방을 나섰다. 바람이 찼다.


미래가 불광행 전철을 탔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OO카드인데요.”

“죄송한데 저 카드 안 써요.”

“아니, 여기 OO카드라고요.”

“네? 그런데요?”


젊은 남자는 피식 웃었다.


“오미래 씨, 구직사이트에 이력서 올렸죠? 업무는 수요일부터고요...”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전 카드사에서 일할 생각은 없어요.”

“하... 에이 씨발.”


짜증 섞인 말투로 미래를 긁던 남자는 욕설을 내뱉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뚜뚜. 내가 왜 이런 무례한 전화를 받아야 하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불쾌했다. 하지만 오늘은 기쁜 날, 기분 좋은 날, 웃어야 하는 날. 미래는 다시 입꼬리를 빙그레 올려보았다. 생애 첫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미래는 엊그제 1차 면접 통보 전화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구직 사이트에 올린 이력서를 보고 온 연락이었다. ‘행복한 동화 나라’. 처음 들어보는 학습지 회사였다. 하지만 공채에서 줄줄이 낙방한 미래는 자신을 찾는 회사가 있단 사실만으로도 무척 기뻤다. 게다가 교육 전문 회사라니, 그동안 자신이 지원한 분야와도 맞아 떨어졌다. 미래는 구직 사이트에서 ‘행복한 동화 나라’를 검색했다. 미래의 게시글이 떴다.

  

‘행복한 동화 나라’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면접 보러 가도 될까요?

- 웬 듣보잡?

- 나도 첨 들어보는 회사.

- 여기서 연락 왔는데, 저는 딴 데 붙어서 거기 갔어요.

- 사촌 동생이 여기 학습지 해요. 뭐, 이상한 회사는 아닌 듯.

- 이거 저거 잴 필요 있나? 일단 보고 오는 거지. 부럽삼!

- 네 ㅎㅎ 떨려요. 다녀와서 후기 올릴게요.


행복한 동화 나라.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미래에게 면접의 기회를 준 유일한 회사였다. 전철이 덜컹덜컹 달리는 동안, 미래는 밤새 준비한 지원 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중얼중얼 외웠다.



미래는 면접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했다. 회사는 후미진 골목 한구석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주변에는 쓰러져 가는 낡은 건물들과 공사장뿐이었다. ‘행복한 동화 나라’. 3층짜리 허름한 건물 벽에 때 묶은 현수막이 힘없이 펄럭였다. 미래는 허름한 건물 외양에 조금 실망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회사라고 마음을 달랬다. 미래는 입구에서 회사 소개 팸플릿을 몇 장 집어와, 전철역 앞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회사 정보와 회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들을 꼼꼼히 체크했다. 무척이나 긴장한 미래는 네 번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뭣하나 시킨 것도 없이 죽치고 앉은 미래를 알바생들이 힐끔힐끔 째려봤다. 미안해요. 돈이 없어요. 쪼그라든 미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시간이 다 되자 미래는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


‘행복한 동화 나라’는 외양만큼이나 내부도 허름했다. 조그만 교실 같은 면접대기실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직원들의 안내로 면접자들은 앞자리부터 자리를 채워 앉았다. 맨 앞자리에 앉은 미래는 옆자리 앳된 여학생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 미래와 비슷한 머리, 비슷한 정장, 비슷한 자세로 앉아있는 여학생이었다. 둘 뿐만 아니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앉은 면접자들은 통로를 가운데로 반듯하게 접어서 찍어 낸 데칼코마니 같았다. 그 머리가 그 머리에 그 머리, 다 같은 우리 미래 같았다. 그때 늙은 스튜어디스처럼 단장한 한 여자가 강단에 등장했다.


행복한 동화 나라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어서 자신을 인사담당자라고 소개한 여자의 말에 면접자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늙은 스튜어디스 같은 인사담당자는 두꺼운 파운데이션 위로 새빨간 입술만 동동 떠다녔다. 과한 메이크업만큼이나 과장된 미소와 손짓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말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모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자는 모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10여 년간 일하다가 이 회사로 옮긴 후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여러분은 우리 회사를 정말 잘 찾아오신 거예요!"


여자는 막 비행안내를 시작하는 스튜어디스 같았다. 무언가 대단한 걸 선포하듯 우렁차고도 낭랑한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고, 인사담당자의 ‘행복한 동화 나라’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동화 같은 분위기. 하지만 초일류 기업을 향한 매서운 성장! 여러분은 잘 모르셨겠지만, ‘행복한 동화 나라’의 전국 지사와 그 규모는 엄청납니다. 10년 전 우리 회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죠. 이 모두가 우리 대표님과 우리 동화 나라 식구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에 발을 딛고 들어선 순간부터 면접은 시작된다. 면접대기실에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자신의 모든 태도가 점수에 반영된다. 수많은 면접 후기에서 읽었던 이야기였다. 지금도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몰라. 미래는 똘똘하게 눈을 뜨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제일 궁금한 게 뭔지, 저는 잘 알아요. 우리 회사 연봉이 얼마인지 궁금하시죠?”


인사담당자는 집게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1억입니다. 1억!



미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면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짜야? 설마. 웅성거림 속에서 어머나! 세상에! 탄식도 흘러나왔다. 인사담당자가 씨익 웃으며 집게손가락을 그대로 입술에 갖다 댔다. 쉿, 모두 어텐션 플리즈.


“‘행복한 동화 나라’는 1억 연봉자 비율이 타사에 비해서 매우 높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저희는 여러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의지! 바로 그 의지만 있다면, 3년 안에 개인 연봉 1억이 가능한 유일한 회사가 바로 저희 ‘행복한 동화 나라’입니다. 대기업에 가면 1억, 바로 벌 수 있을 거 같아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가능한 일이죠. 저희 대표님과 식구들을 믿고 따라오세요. ㅇㅇ에서 10년간 인사담당자로 있었던 제가 보장합니다.”


인사담당자의 프레젠테이션은 간증에 가까웠다. 커다란 모니터에서 사진들이 플레이되었다. 대표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두 손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웃고 있었다. 부흥회와 비슷한 회사 워크숍 사진들, 복잡한 용어와 숫자, 그리고 통계가 정리된 도표들, 그 사이에 우뚝 솟은 회사 매출 그래프, 개인 연봉 1억 달성자들의 생생한 후기들.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던 그 순간, 미래에게는 정말로 동화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가 펼쳐졌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면접자의 눈이 반짝였다.


별빛 같은 젊은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자, 저는 여러분을 연봉 1억 별나라로 안내해 줄 일등석 스튜어디스! 대기실 뒤편에 조르르 선 회사 관계자들이 감탄사를 쏟아내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터져나온 박수들이 물밀 듯이 밀려와 미래의 손바닥에도 닿았다. 미래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이 새빨개질 정도로 힘차게 박수를 쳤다. 인사담당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화요일의 그녀] 우리 미래 2 https://brunch.co.kr/@daljasee/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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