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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22. 2015

오미래2

우리 미래 2. 취준생 오미래의 하루

[오미래] 우리 미래 1 https://brunch.co.kr/@daljasee/58




별도의 면접은 없었다. 인사담당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난 후, 면접자들은 나눠준 문서를 작성했다.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 그리고 일하고 싶은 희망지역을 3 지망까지 적어냈다. 이미 자소서에도 기재했던 아주 간단한 문항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빽빽이 빈칸을 채웠다. 미래가 일어나자 인사담당자가 다가왔다.


“이름이 뭐예요?”

“오미래라고 합니다.”

“아까부터 봐왔는데, 태도가 아주 인상 깊더군요. 오미래 씨, 늦어도 오늘 안에 전화가 갈 거예요. 임원면접에 꼭 나오길 바랍니다.”


인사담당자가 싱긋 웃으며 스쳐 갔다. 짙은 향수 냄새가 아찔했다. 합격통보였다. 미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래는 인사담당자의 독한 향수 냄새가 오래도록 자신에게 머물기를 바랐다.  



미래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다시 뒤돌아보니, 아까의 허름한 회사 건물은 없었다. 그 자리엔 미래를 연봉 1억 별나라로 데려다 줄 로켓처럼 생긴 건물 하나만 우뚝 솟아 있을 뿐이었다. ‘행복한 동화 나라’ 현수막이 국기처럼 펄럭였다. 벌써부터 뜨거운 애사심이 샘솟았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미래는 ‘행복한 동화 나라’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사실 미래는 1억 연봉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안정된 회사와 바쁘게 일할 시간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빡빡한 일상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업무에 치여서 스트레스도 받고, 지랄 같은 상사도 만나고, 고객들에게 굽신거리고, 회의회의 또 회의인 회의주의자도 정말로 되어보고 싶었다. 어떤 일이라도 시켜만 주신다면 나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정말 별 거 없었다. 미래는 그저 제 이름이 찍힌 사원증 하나면 충분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미래를 부른 것 같았다.


“언니.”


아까 미래의 옆자리에 앉았던 여학생이었다. 미래가 그녀에게 언니인지, 동갑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상한 건 분명했다. 여학생은 울고 있었다.


“언니...”

“왜 그래요?”

“언니, 그 회사요.”


여학생은 뭔가를 꿀꺽 삼켰다.


“다단계래요.”


여학생은 ‘다단계’라는 단어를 마치 목에 걸린 왕사탕처럼 힘겹게 뱉어냈다. 그리곤 설움이 북받쳤는지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미래가 뺏은 것도 아닌데, 미래가 울린 것도 아닌 여학생은 미래를 앞에 두고 숨이 넘어갈 듯 끅끅거리며 울었다.  


“그래요.”


미래는 여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랬군요’나 ‘그랬어요’처럼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담담한 말투였다. 두 대의 전철이 지나가고 나서야 여학생은 울음을 그쳤다. 여학생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미래는 한참 동안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퉁.

미래의 구두코에 뭉툭한 무언가 와 부딪쳤다. 미래가 바닥을 보자 동그라미들이 점점이 어룽거렸다. 여학생이 뱉어낸 왕사탕 같은 것들, 아무튼 그런 것들이 이내 후두둑 떨어졌다. 결국, 미래도 전철을 놓치고 말았다.



전철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미래는 가장자리에 기대어 앉아, 건너편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검은 롱코트에 파묻힌 미래, 문득 자신의 차림새가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비슷하단 걸 깨달았다.


‘은하철도 999’는 아주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였다. 메텔은 우아한 블랙 롱코트를 입고 은하철도 999를 탔었다. 기다란 금발 머리에 블랙 샤프카를 쓴 아름다운 메텔은, 완벽한 여자 어른의 모습이었다. 미래도 그렇게나 가녀리고 어여쁜 여자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메텔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신비로운 메텔. 그녀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메텔의 옷은 상복이고 그녀는 복제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상복을 입은 복제인간이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철을 타고 늙은 스튜어디스와 떠나는 가난한 메텔, 반짝이는 은하수를 건너서 1억 연봉 탑이 우뚝 솟아있는 행복한 동화 나라로 향하겠지. 하지만 그곳엔 수많은 복제인간 메텔이 기다리고 있을 뿐. 또 다른 메텔 2호와 메텔 3호는 어떤 꿈을 꾸며 기차에 탑승할까. 아니, 메텔은 대체 몇 호까지 만들어지고 또 버려졌을까.



전동차 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전철을 탔다. 문제집을 손에서 떼지 않고 훑어보는 모습이 수험생 같았다.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애는 연신 동그란 안경을 고쳐 올리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창백한 얼굴이 몹시 지쳐 보였다. 미래는 김애란의 소설에서 읽은 한 구절을 떠올렸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그러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는 나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될 거야. 나보다 최악인 사람은 없으니까.'


미래는 차라리 공부하는 여자애가 부러웠다.


미래는 돈이 없었다. 미모가 없었다. 재능이 없었다. 학벌이 없었다. 스펙이 없었다. 빽이 없었다. 아빠가 없었다. 꿈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래가 없었다.



조용히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딸, 면접은 잘 봤어?”


엄마는 왜 나를 낳았냐고. 미래는 물어보고 싶었다.  


“미래야, 오미래? 왜 그래? 별로였어?”

“아니... 엄마, 나 임원면접 보러 가.”

“어머나! 우리 딸...”


수화기 너머로 감격스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잘 됐다. 역시 우리 미래, 멋진 미래!”

“그러게. 멋지네. 정말 멋지다. 우리 미래.”


미래는 건너편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미래의 모습이 자꾸만 흔들리는 까닭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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