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문학나눔 도서 소설분야 선정
소설 <까멜리아 싸롱>이 2025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습니다. 브런치에 혼자 연재를 시작했고 출간까지 이어졌던 첫 장편소설이기에 <까멜리아 싸롱>을 돌아보면 언제나 여러 마음이 오가는데요. 소설에 대한 가능성과 격려의 목소리로 삼고서,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써보겠습니다.
<까멜리아 싸롱>은 브라질과 러시아, 대만에서 해외 독자들을 만날 준비 중이에요. 가까운 서점과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즐겁게 읽어주세요. 겨울, 까멜리아 싸롱의 계절이 돌아오네요. 날씨가 추워지니 우리는 따뜻해져요.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둔 작가의 말을 전합니다.
어느 밤엔가. 깜깜한 길을 걷는데 누군가 등을 쓸어주며 내 얘길 들어주었다.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이런저런 비밀까지도 털어놓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가만히 다독여 주는 목소리가 안심이 되어 발치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맨발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었구나. 꿈에서 깨어났을 땐 조금 무서웠지만 이내 뭉클해졌다. 산 사람 얘기를 다정하게 들어주는 귀신이라니, 고맙기도 하지.
휘요오이 휘요오이. 어릴 적 밤길을 걸을 때면 엄마는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어둠 속에 엄마 여기에 있다고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온대. 엄만, 안 무서워? 묻는 나를 보며 엄마는 피식 웃었다. “그럼 좀 어떠니. 귀신은 무섭지 않아. 엄마는 죽은 언니가 지금도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 같거든.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이 들어. 암만, 귀신보단 사람이 더 무섭지. 그걸 알 때쯤 너도 어른이 될 거야.”
빛을 죽인 채 밤길을 걸어야만 했던 나날과 이후로 마주한 삶의 고비마다 내 곁에 머물다간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죽은 할아버지도, 죽은 할머니도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거라고. 살아 있을 때도 나를 지켜준 이들이 죽어서도 나를 지켜주고 있을 거란 믿음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씩씩하게 했다. 새벽녘엔 맑은 물을 떠놓고 떠난 이들의 평안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빌던 할머니와 엄마. 나를 돌봐준 사람들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하는 기묘하고 뭉클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나의 첫 소설이 판타지 소설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10여 년간 작가로 일하며 휴먼다큐를 만들고 에세이를 쓰고 글쓰기 수업을 이끌었다.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만큼의 인생사를 들었다. 진짜 대화는 이력서 공란을 채우듯 소개하고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긴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걸 경험했다. 사람과 사람은, 대화를 나눠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럼 만약에, 이승과 저승 사이 신비로운 공간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마흔아홉 번의 밤을 함께 보낸다면.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긴긴밤을 지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그런 상상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가장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공간, 경성 시대 가상의 다방 ‘까멜리아 싸롱’부터 구상했다. 까멜리아 싸롱의 겨울. 첫눈 내릴 때부터 동백꽃 필 때까지 웰컴 티타임, 심야 기담회, 성탄전야 음감회, 제야 송년회, 흑야 낭독회, 고요 조찬회, 설야 차담회, 월야 만찬회. 절기와 기념일들을 세며 여덟 번의 대화 모임을 열어야지.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생각도 모두 다른 여덟 사람이 모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렸다. 겨울을 이기고 꽃이 피듯이 서서히 회복하는 밤들을 그려봤다.
그리하여 까멜리아 싸롱에 찾아와 준 인물들. 여순자, 지원우, 마두열, 유이수, 설진아, 박복희, 구창수, 안지호에게 고맙다. 한자 의미를 찾아 이름을 짓고, 생김새를 그리고, 인생을 가늠하고, 인연들을 이어보았다. 당신들이 전하고픈 진실은 무얼까 상상해 보았다. 마치 까멜리아 싸롱의 사서가 된 것처럼 나는 당신들의 인생을 겪어보고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때때로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여 눈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낼 때는, 내 인생을 빵처럼 조금씩 떼어 먹여주었다. 숨겨두었던 아픔과 슬픔, 비밀까지도 기꺼이.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야말로 ‘까멜리아 싸롱’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았다.
‘까멜리아 싸롱’을 떠나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너그러워졌다. 그곳에서 만난 인생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서 함부로 세상을 미워할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조금씩 나눠 가지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전보다는 따뜻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볕처럼 따스한 힘이 뭉근히 차올랐다. 누구든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친절해졌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타인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는 생애 마지막 마음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휘요오이 휘요오이. 할머니와 엄마의 바람 같은 숨은 여전히 나를 불러준다. 우리 여기 있다고. 그러니 사는 일일랑 무서워 말라고. 소설을 탈고한 어느 밤엔가. 꿈에 할머니가 찾아와 내 이마를 오래 짚어주다가 갔다. 누군갈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할머니와 엄마의 인생도 조금씩 떼어 나눠주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누군갈 사랑했다.
첫 장편소설을 믿고 지지해 준 클레이하우스 출판사와 윤성훈, 김정현, 김윤하 편집자님. 그리고 훗날의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책을 펼쳐 ‘까멜리아 싸롱’에 찾아올 독자들이 궁금하다. 조용히, 가만히, 자세히 밤하늘에 별을 헤아리듯이. 당신들의 인생을 헤아리고픈 마음을 담아, 나의 첫 소설을 선물한다.
<까멜리아 싸롱>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