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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25. 2015

금요일의 포도

봉다리에 담긴 엄마의 포도

올해 들어 엄마와 나는 자주 만났다. 엄마는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에 찾아왔다. 나는 반가웠지만, 반갑지 않았다. 엄마가 아픈 곳이 많아졌다는 뜻이니까. 엄마가 서울에 올 때마다, 나는 엄마를 데리고 종합병원을 찾았다.


어제도 엄마는 심야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역시나 짐이 한 보따리였다. 무거웠다. 아니 이걸 어떻게 혼자 들고 온 거야? 나는 심통이 났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열무김치랑 부추김치랑 담가왔지. 아, 그리고 사과랑 배랑, 포도도 있어.”


“과일은 집 앞에 시장 가서 사면 되잖아. 무겁게 뭘 다 바리바리 싸들고 와?”

“아니야. 이게 서울 과일이랑은 달라. 다 고랭지! 유기농이야.”


고랭지, 유기농은 개뿔.

그냥 동네 시장에서 사 온 거면서.


나는 사과랑 배랑 포도가 너무너무 미워서 냉장고에 퉁 처넣어 버렸다.


“딸, 요고 포도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


엄마는 포도부터 꺼내 씻었다.


“어머나, 어떡해. 다 물러버렸네. 아까워라.”


물렀거나 말거나. 별로다.

엄마는 포도 한 접시를 담아왔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먹어 봐. 아우 맛있어.

엄마는 대며 포도를 내밀었다.


“딸, 맛있지? 진짜 맛있지?”


달긴 달았다. 하지만 나는 암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포도 몇 알만 먹고 말았다.


 

오늘 아침, 병원에 갈 짐을 싸는데 엄마가 포도를 씻어서 봉다리에 넣었다. 포도가 너무 맛있어서 병원에서 혼자 먹을 거랬다.


엄마는 종일 병원에 있었다. 포도를 까먹을 시간도 없었다. 치료를 받고 핼쑥해진 얼굴로 엄마는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일찍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든 엄마를 바라보다가, 문득 엄마 가방 속에 넣어둔 포도가 떠올랐다.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놔야겠다.


포도를 씻었다.

물컹물컹했다. 죄다 짓무른 포도알들이었다.


엄마는 짓무른 포도알만 골라서 혼자 먹겠다고 봉다리에 넣어 갔던 거였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물컹물컹. 짓무른 포도알을 그저 씻고 또 씻었다.


마, 그냥 말해줄 걸 그랬어.



엄마, 포도 진짜 달다. 맛있네!


짓무르고, 알알이 떨어진 엄마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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