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토록 아름다운 감탄의 언어
여보세요? 나야.
거리를 걸어가는데 바람이 불었어. 그때 빨간 낙엽이 팔랑팔랑 떨어지더라. 아! 가을이야.
아니, 왜? 인스타에 친구들은 다 연옌급 아가씨들이야? 말도 마. 난 아침부터 세수도 못 했어. 늘어진 티에 푸석한 얼굴, 떡진 머리. 완전 아줌마. 그래도 품 안에 웃고 있는 울 애기. 아! 예뻐 죽겠어. 웃지 마, 기지배야. 너도 애 낳아봐라.
머리 어깨 무릎 발. 안 아픈 데가 없어. 옮겨도 옮겨도 끝이 없는 택배 상자들. 이거 오늘 안에 다 배달해야 해. 점심? 그냥 차 안에서 빵으로 대충 때우고 있는데 화상 전화가 오더라. 아! 아들 놈이야. 아빠 아빠. 말도 못하면서 입만 뻥끗 뻥끗, 그래도 이눔이 지 아빠 얼굴은 알아보는지 방긋방긋 웃더라구. 금쪽같은 내 새끼.
셤공부 많이 했냐? 야,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다가 밤은 꼴딱 새워줘야 하는 거 아냐? 나? 어제 애들이랑 도서관에서 밤샜지. 아놔, 근데 왜 대학교 셤은 왜 날 좋은 기간에만 보냐. 심난하다. 심난해. 암튼, 나 아까 화장실에서 씻고 나옴. 근데 대박! 오늘따라 화장은 엄청 잘 먹은 거 있지. 날씨도 대박! 그래서 내가 셀카를 찍었단 말야? 아! 대박 대박! 인생사진! 지금 보내줄게. 진짜 나 보정 하나도 안 했다. 야, 진짜다.
‘택배 배송 기사입니다. 경비실에 보관 중이오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택배 왔다!
조금 이른 퇴근길. 2호선 당산행 전철을 탔어. 너도 알지? 합정에서 당산으로 향하는 그 구간. 전철이 한강 위를 달리는 구간 말이야. 아! 해가 지고 있었어. 분홍색 주황색 보라색 하늘. 그리고 반짝이는 한강. 너도 봤을까?
기획안 마감이 내일이야. 근데 나 어제도 밤샜단 말이야. 야, 솔까. 사람이 잠은 자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야, 나 말하는 거 이상하지. 뭐더라. 아. 그. 아 그거 있잖아. 아씨. 단어도 생각 안 나. 미치겠네. 나 지금 언어장애 온 거 같애. 잠깐만. 네, 대리님. 네? 네에. 여보세요? 와! 대박! 마감 일주일 뒤로 미뤄졌대. 술 먹자! 뭐? 자라고? 새꺄, 이틀 안 잔다고 사람 안 죽어. 빨랑 튀 나와. 술이다!
요즘 밤이 꽤 쌀쌀해. 엊그제는 집에 가는 길에 어디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더라구. 그런데 와! 골목길에 호떡 아줌마가 다시 돌아온 거 있지. 기름 두르고! 반죽 꾹 눌러서 호떡을 굽는데. 절로 침이 고이더라. 그래서? 당연히 냉큼 하나 사 먹었지. 맛있었어. 올해의 첫 호떡
와! 울 팀장님이 공짜표 주셨다. 야구 보러 가자!
과일을 사러 갔는데 벌써 귤이 나왔더라. 가게 아줌마가 귤 두 개를 쥐어줬어. 난 고새를 못 참고 귤을 까먹었지. 손에 귤 냄새가 뱄어. 아! 향긋한 귤 냄새. 우리 함께 들었던 그 노래, 기억해? 재주소년의 ‘귤’. 찬바람에 실려 떠나갔던 내 기억, 일 년이 지나 이제 생각나네. 그랬어. 나는 네 생각이 났어.
수능 D-20 쉬는 시간. 엎어져 자다가 일어났더니 책상 위에 초코우유가 올려져 있더라. 그리고 노란 포스트잇. ‘그만 자! 잠탱아♡’ 뒤돌아보니 단짝이 배시시 웃고 있어. 아! 이 깜찍한 기지배.
엄마. 오늘 영어학원에서요. 영어 잘하는 걔 있잖아요. 응. 민우. 걔가 영어로 그랬어요. 아이 라이크 유. 아이 러브 유. 베리 마치. 너무 쉽다고요? 엄마. 그게 문제가 아녜요. 와! 걔가 베리 마치라잖아요. 나도 말하고 싶었어요. 아이 러브 유 투! 베리 마치!
수고했어, 오늘도. 잘자.
문득 일상의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어떤 시작이거나 반복, 혹은 바쁘고 바쁘지 않고의 배경이 이 '의미의 완성'을 좌우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일 하루 중에 스스로 감탄할 수 있는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일상의 한 조각 아름다움은 반짝, 감동으로 빛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소한 감탄만으로도 특별히 의미 있는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아!
이처럼 감탄의 언어는 짧고 깨끗하며 여운이 길다. 마치 오늘 특별한 나의 하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