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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27. 2015

화요일의 레일

레일 위로 출근하는 아버지들

레일 하나

지하철 기관사 아저씨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레일 위를 달릴까


인천에 살 때, 나는 계양행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계양으로 가는 인천선은 급행 전철 개념이 없었다. 계양이 종점인 ‘계양행 전철’과 계양역 두 정거장 전인 박촌이 종점인 ‘박촌행 전철’이 번갈아 운행되었다. 하지만 인천선은 레일이 하나뿐이라서, 계양까지 가려면 영락없이 ‘계양행 전철’을 타야만 했다. ‘박촌행 전철’을 타 봤자 박촌에서 내려 다음 전철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매일 출근길마다 계양행 전철을 목을 빼고 기다렸다. 사실 딱 5분만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서면 시간표대로 무사히 계양행 전철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5분이 언제나 간당간당했다. 바로 코앞에서 계양행 전철을 놓쳐버리고 꼬박 10분 이상 다음 전철을 기다린 날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들어오는 전철들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게 전철 탓은 아니었고, 기관사 아저씨 탓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단지 늦게 나온 내 탓일 뿐인데도. 나는 전철을 몰고 들어오는 기관사 아저씨를 씩씩대며 째려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계양행 전철을 운전하는 기관사 아저씨는 항상 흰색 이어폰을 끼고 계신다는 것. 참 별거 아닌데도 나는 궁금했다. 이어폰으로 뭘 들으면서 운전하시는 걸까.


나는 하도 궁금해서 '지하철 기관사'에 대해 찾아봤다. 이어폰 속 소리의 정체에 대해 알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지하철 기관사의 정체에 대해 나는 알 수 있었다. 


지하철 기관사. 

기본 운행은 3시간. 좁은 기관실에서 혼자, 어둠을 달리는 지하철 기관사는 정신장애 발병과 자살률이 높은 직업이었다.



몇몇 기관사들의 인터뷰는 이러했다. 


"저희의 직무는 대부분 열차 운행이기 때문에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순간에도 레일 위를 달리는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형광 불빛을 계속해서 보기 때문에 시력이 굉장히 나빠지고, 바람 소리를 계속 듣기 때문에 난청도 심해지고, 가끔 운행 중 생리적 현상 때문에 굉장히 힘듭니다. 용변을 보던 기관사가 선로에 떨어져 죽은 사건 이후, 운전실에 간이용 변기를 설치해 화학약품 응고제를 사용하여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근무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당연합니다.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순간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듭니다. 그럴 때면 가족들 사진을 본다거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저장해 둔 파란 하늘 화면을 보면서 승무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곤 합니다."


"매일 하는 지하철 운행인데도 근무하기 20분 전부터는 호흡이 가빠지고, 신경이 곤두섭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승무(운행)하지만, 세 번 승무할때도 있는데 이럴 땐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한 번은 정차 중 잠시 졸다가 강남역을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꿈을 꾸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정차해 있는 열차의 비상 버튼을 누른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 창피합니다."   



지하철 기관사들의 인터뷰는 충격적이고도 안타까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홀로 좁은 기관실에서 매분 정확한 시간과 위치에 정차하는 지하철 기관사. 그야말로 극한직업이었다. 내가 매일 한발 늦게 나온 주제에 씩씩대며 째려보던 기관사 아저씨는, 매일 매일을 어둡고 좁고 고독한 일터로 출근하는 누군가의 아버지일 터였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매일 출근길, 계양행 전철을 운행하는 기관사 아저씨는 항상 흰색 이어폰을 끼고 계신다. 깜깜한 터널을 깜빡깜빡 지날 때마다 아저씨의 이어폰에서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 음악이 아니라면 어떤 소리를 들으며 레일 위를 달릴지 나는 궁금하다. 다만 시끄러운 바람 소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레일 둘

지하철 레일 작업 아저씨들은 어떤 마음으로 레일 위에 설까


어느 날, 전철을 기다리다가 전철역 레일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을 본 적이 있다. 


레일 한가운데에서 여섯 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크린도어 너머로 사람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호루라기를 삑삑 불었다.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여섯 명의 근로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선로 옆 작은 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좁은 틈새에 쪼그리고 앉았다. 


전철은 순식간에 레일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작업의 과정이라지만, 좁은 틈새에 몸을 숨긴 근로자들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전철의 속도와 소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낄 것이 아닌가. 


전철이 지나가고 근로자들은 다시 레일 위로 걸어 나와서 작업을 계속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나는 종종 레일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근로자들의 뉴스를 접했다. 일하던 근로자들이 들어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뉴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날 목격했던 레일 위의 근로자들을 떠올렸다. 나이가 지극하신 아버지뻘 근로자들. 좁은 틈새로 뛰어가던 뒷모습과 공벌레처럼 몸을 말던 구부러진 등. 누군가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런 안타까운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저절로 죽음의 광경을 상상했다. 레일 위에서 갑작스럽게 맞이한 그들의 죽음은 얼마나 처절했을까. 또 그 전철을 운전한 기관사의 죄책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짐작할 수도 없다. 



얼마 전, 내가 탄 전철이 터널 안에서 멈춘 적이 있었다. 


전철은 크게 덜컹거리며 멈춰 섰고, 균형을 잃은 나는 철 기둥에 머리를 부딪쳤다. 나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순간, 내가 보았던 기관사와 근로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곧 급정거를 해서 죄송하다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기관사는 작은 운행 문제로 잠시 후에 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5분쯤 멈춰 선 전철 안에서, 사람들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투덜거렸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잠시 멈춰 선 5분을 몹시도 불쾌해했다. 잠시 후, 전철은 다시 레일 위를 달렸다. 


아버지들은 오늘도 레일 위로 출근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나는 감히 그들의 직업은 매우 귀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지만 보이지 않는 어둔 곳에는 이런 일을 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부디 오늘도 무사하기를. 

달리는 전철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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