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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28. 2015

수요일의 코끼리 춤

지루하고 심술궂은 존재들의 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코끼리 코를 잡고 뱅글뱅글 돌면서 놀곤 했다. 열 바퀴만 돌아도 엄청 재밌었다. 코끼리 코를 뱅글, 코끼리 코를 풀고 일어나면 그 순간 또 세상이 빙글. 아찔한 감각과 갈지자로 꼬이는 스텝이 무쟈게 재밌었다. 아마도 코끼리는 이렇게 춤을 출지도 몰라. 어렸을 땐 그런 생각도 해봤다.  


훌쩍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어떤 학자가 쓴 이야기를 읽었다. 거대하고 순하기로 유명한 코끼리도 자주 지루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기다란 코를 뻗어 상대방을 귀찮게 괴롭히거나, 물을 뿌려 심술을 부린다. 심지어 거대한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거나, 쿵쾅쿵쾅 발을 구르기도 한단다. 


지루하고 심술궂은 코끼리에게는 아주 좋은 특효약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음악이다. 

바이올린 선율이 들어간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 코끼리는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지루함을 느끼는 코끼리가 있냐고. 그러게 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코끼리들은 모두가 지루하고 심심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광활한 초원을 맘대로 누비지 못하고, 작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매 끼니 건초더미를 먹는 코끼리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심술궂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지루하고 심술궂은 코끼리.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코끼리 같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라면 대부분. 동물원 우리보다 훨씬 더 좁은 책상에 꼼짝없이 갇혀서, 어제와 똑같은 오늘 하루를 살 것이다. 어른이 아니더라도 수능을 앞둔 수험생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저녁까지 뺑뺑이를 도는 학생들도. 내 몸통만 한 딱 고만한 둘레 안에서, 우리는 코끼리 코를 잡고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지루하고 심심한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비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심술궂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정말 당연하다. 700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코끼리도 툭하면 지루하다고 심술을 부리는데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뱅글뱅글의 반복이다.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점심엔 누구랑 무얼 먹을지 알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뻔한 하루. 뻔한 매일매일이 뱅글뱅글 도는 하루. 그래서 우리는 지루하고 심술궂은 존재들이 된다. 


세상이 뒤집히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러니 심술을 내어서 무얼 하나. 심술이 치솟을 때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노래 한 곡을 들어보길 바란다. 



나의 페이버릿 송 한 곡. 아무리 길어봤자 5분 이상을 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딱 5분,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들으며 잠시 코끼리 코를 풀고 춤을 추기 바란다. 세상은 빙글빙글 돌고, 아찔한 감각과 갈지자로 꼬이는 스텝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짜릿하게 흔들어 줄 것이다. 


알고 있다. 소심한 어른인 우리는 대낮에 혼자 춤이나 출 정도로 뻔뻔하지 못하다는 걸. 의자에 앉아서 쿵짝짝 쿵짝짝, 소심한 발구르기라도 상관없다. 그저 나의 페이버릿 송 한 곡만 내 귀에 흐른다면 우리는 한결 기분 좋아질 것이다.  


오늘 하루도 마음속으로 흔들흔들 코끼리 춤 한 곡쯤 땡겨보길 바란다. 

지루함과 심술이 그대의 마음을 덮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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