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조제

외롭고 쓸쓸한 목요일, 조제처럼 살아

by 고수리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츠네오와 조제

나는 종종 조제를 생각한다.


츠네오와 조제는 연애를 하게 된다. 어느 날 츠네오를 좋아했던 카나에가 조제를 찾아온다. 카나에는 궁금하다. 츠네오는 어째서 장애인과 연애를 하는 걸까? 조제는 어떻게 츠네오를 가졌을까? 장애인에게 애인을 빼앗긴 것이 분한 카나에는 휠체어를 탄 조제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럽다."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


조제의 당돌한 대답에 카나에는 조제의 뺨을 때린다. 조제도 카나에의 뺨을 때린다.


나는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낄 때도. 그를 질투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못나 보일 때도. 알량한 자존심으로 뻔뻔하게 잘난 척을 해볼 때도. 빛나는 누군갈 사랑하지만 나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 때도. 삶은 이상하게 슬픈데 세상은 거짓말처럼 그대로일 때도. 영화 속의 이 장면이 떠오른다.


카나에와 조제의 삶을 놓고 본다면, 조제가 더 불행하다. 조제는 장애가 있고 외롭다. 지켜보는 우리가 다 조마조마할 정도로 그녀의 주변은 불안하다. 연애를 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애인이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는 건지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제는 불행하기 때문에 츠네오를 가졌다. 조제의 불편한 다리가 카나에에겐 도무지 얻을 수 없는 무기였다.


내가 도무지 얻을 수 없는 타인의 삶이란 게 있다.

그것은 정교한 삶의 문신 같은 것.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이의 삶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어쨌든 그것은 긴 고통의 시간을 거쳐 새겨진 아픔의 흔적이다. 바늘로 생살을 수백 번 찌른 상처는 고통스럽고, 아무는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멀쩡해진다 한들, 그 흔적은 가끔 통증을 호소한다. 삶은 그렇게 새겨진다.

어린 날에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빛나는 사람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그에 비해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너무도 하찮아서 죽을 것 같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주의 고아처럼 외로웠고, 세상의 온갖 상처는 내가 다 입은 것 마냥 괴로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나는 괜찮았다. 가끔 외롭고 불완전한 나를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호기심과 연민으로 다가온대도 잠시 나눠주는 온기만으로 충분했다. 연인이 곁에 머물면 언젠가 그가 떠날 줄 알았어도 나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나는 불행하고 외로웠으니까. 어차피 결국에는 혼자가 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았다. 체념은 아니었다. 그냥 내 삶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오롯이 혼자인 나만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였고, 어쩌면 가진 것 없는 내가 부릴 수 있는 최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무언가 결핍된 삶은 바늘로 콕콕 찍어대며 새길 것들이 많았다. 아프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그래도 살아가고는 있었고, 어쨌든 무늬를 만들며 뭔가를 남겼다. 그렇게 새겨지는 문신은 무명 예술가의 작품처럼 간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내 삶에는 어떤 작품이 새겨지려고 이렇게나 아플까. 결국, 결핍이란 건 숨기기만 하는 삶의 약점이 아니라, 대놓고 상처받으면서 삶을 새기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깨끗이 놓아버렸다. 모든 삶이 행복하리라는 환상과 연인이 곁에 있으면 외롭지 않으리라는 착각을.



조제 : 눈 감아 봐, 뭐가 보여?

츠네오 : 아무것도... 깜깜해.

조제 : 그곳이 옛날에 내가 있었던 곳이야.

츠네오 : 어디가?

조제 :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츠네오 : 뭐 때문에?

조제 : 자기랑 이 세상에서 제일 야한 섹스를 하려고.

츠네오 : 그렇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고 있었구나.

조제 : 그곳에는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너무도 고요해.

츠네오 : 외롭겠다.

조제 :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이지. 언젠가 자기가 없어지게 되면...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놓아버린 순간, 나는 조제가 말한 그 곳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리고 말았다. 다시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리고 조제는 괜찮았을까?


츠네오와 조제는 헤어진다. 조제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놓아버린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나 있었듯이, 담담하게 그녀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바깥세상으로 나와,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찾아가 마주 볼 정도로 츠네오를 사랑했다. 하지만 츠네오는 조제를 연민했다. 충분히 아픈 이별이었다. 조제에게는 이제 가족이 없고, 애인이 없고, 다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괜찮다. 조제는 자신의 삶, 그 밑바닥을 마주 보았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고 외톨이인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그녀는 안다.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이 곁에 없더라도.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남들은 빛나고만 있는데, 나는...

우리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외로움이 병인 양 외면하고 불행을 꽁꽁 싸매곤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당신 삶 자체다. 당신은 애초부터 그런 밑바닥에서 살아왔고, 원하지 않아도 아픔을 참아내며 무언갈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쯤은. 가만히 당신의 삶에 새겨진 무늬들을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사무치게 외롭고 쓸쓸한 날에는 조제처럼 살아보길 바란다.

당신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내려가 가여운 나의 삶, 그 애틋한 무늬를 바라보길. 센티해도 괜찮다. 무너져도 울어도 괜찮다. 어차피 그곳엔 아무도 없으니까 뭐라 비난할 사람도 없다. 우리는 완벽한 고독으로 가득 찬, 우주의 고아처럼 오롯이 혼자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깜깜한 밑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나 하나, 혼자라는 쓸쓸함은 위로가 된다.



이 글은 영화를 보고 쓴 감상이 아니라, 오직 '조제'에게만 시선을 두고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저마다의 감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분석보단 다름으로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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