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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9. 2015

목요일의 라면 한 그릇

엄마와 나의, 라면 한 그릇

어제는 비도 오고 기분이 별로인 하루였다.


할 일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하는데,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기분전환 겸 따뜻한 아메리카노나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순간, 입천장을 데고 말았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딸, 집이야?"

“응. 왜?”

“우리 딸 목소리가 별로네. 무슨 일 있어?”


그러게. 무슨 일일까, 그냥 사실대로 날씨 탓인지 컨디션 탓인지 기분이 좋지 않노라고 말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짜증이 났다. 공연히 깊은 한숨만 쉬다가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아니, 왜?”


엄마와 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냥. 그냥 전화해봤어. 밥 챙겨 먹어, 딸.”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진 동시에 나는 후회했다.


나는 왜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걸까.

엄마는 왜 화도 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넘어가는 걸까.


나는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얼굴을 찌푸린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후,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책을 찍은 사진이었다.



딸, ‘우동 한 그릇’은 구리 료헤이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인데 글이 따뜻해. 네가 펼쳐놓은 글세상 같아. 딸, 사랑해.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사랑해. 나는 뚝뚝한 답장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나는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서 엄마가 말한 책,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찾아 읽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조금 울고 말았다.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는 12월 31일마다 들르는 손님이 있었다. 가난한 엄마가 두 아들과 손을 잡고 찾아왔다. 먹는 사람은 세 명이지만 가난한 엄마는 꼭 우동 한 그릇만 시켰다.


마음씨 따뜻한 북해정 주인 부부는 배려가 너무 티 나지 않도록, 일 인분 하고도 반 정도만 면을 더 넣어 푸짐한 우동 한 그릇을 내어주었다. 세 명은 우동 한 그릇을 나눠 먹었다. 엄마는 거의 먹지 않았지만.


우동을 다 먹고 나서 그들이 돌아갈 때면, 주인 부부는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느새 12월 31일만 되면 주인 부부는 그 가족을 기다렸다.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두었고, 그들이 오면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내어주었다.


12월 31일, 또다시 엄마와 두 아들이 찾아와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가족은 우동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하셨는데, 쥰이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 내용을 읽어드릴게요. 전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쥰이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생각했어요. 쥰은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빚을 많이 남겼다는 얘기,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신다는 얘기, 제가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모두 썼어요. 그러고선 12월 31일 밤 셋이 먹은 우동 한 그릇이 무척 맛있었다는 얘기랑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했는데도 우동집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얘기도 썼어요. 쥰은 그 목소리가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대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큰 목소리로 읽었어요.”

계산대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 내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계산대 깊숙이 웅크린 두 사람은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기면서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연신 닦고 있었다.

- 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 중에서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행복한 가족, 그리고 혹시나 동정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조심하며 푸짐한 우동 한 그릇을 내어준 주인 부부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슬펐다.


늦은 밤, 두 아들을 데리고 와, 우동 한 그릇을 시키고는 거의 먹지도 못한 가난한 엄마는 그 옛날 우리 엄마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남매 손을 잡고 일 인분 음식을 시켜 먹었던 젊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우 우동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해서 눈치 보는 가족을 위해, 큰 소리로 새해 인사를 외치던 주인 부부의 따뜻한 마음. 엄마는 내 글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우동 한 그릇>을 읽은 탓인지 따뜻한 국물과 면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냐, 딸. 저녁은?”


엄마는 나의 전화에 ‘왜?’라고 묻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엄마는 언제나 걸려온 나의 전화에 왜 전화했냐고 묻지 않았다.


밥은? 엄마, 지금 목욕탕 왔어. 엄마, 장 보는 중이야. 반찬 보내 줄까? 수리야. 딸. 우리 딸이네. 아이구, 예쁜 딸.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대꾸했다.


“나 라면 먹고 있어.”

“엄마도. 지금 라면 먹고 있어.”

“아니, 이상하게 비 오니까 라면이 땡기더라구.”

“맞아. 비 오는 날에는 라면이 최고지.”


우리는 수화기를 들고 수다를 떨면서 후루룩 라면을 먹었다. 진지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엄마, 김치 좀 보내줘. 저번 김치 맛있던데. 그치? 그거 엄마가 다 유기농으로 만든 거야. 유기농으로 만든 건 또 뭐야? 조미료 하나도 안 넣어서 만든 거라니까. 젓갈이랑 소금은 조미료 아니야? 음, 아무튼 엄마는 유기농으로 김치 만들어.


말도 안 되는 엄마 말에 깔깔깔 웃다가 나는 또다시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로 혼자 먹는 엄마와 나의, 라면 한 그릇.

이상하지 엄마. 오늘은 참 눈물이 많은 날이네.


깜깜한 창 밖에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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