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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uvved Mar 18. 2022

12월에 본 여름

콜미바이욜네임을 보고 너무 슬픈 사람이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낸 글

12월에 쓴거임 


최근에 영화를 열심히 봤었다. 너무 일을 많이하니까, 내 눈과 머리가 보는 게 블록체인 어쩌고 뿐이라는 게 너무 슬프고 불쌍해서 퇴근을 일찍하거나 출근을 안하는 주말에 짬을 내서 영화를 이것저것 봤다. 난 드라마 몰아보는 것도 웹툰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데, 드라마는 한 시리즈 끝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웹툰은 누우면 뻗어 자느라 밀린 지 오래다. 그래서 주말에 한시간 반 두시간이면 머리가 예쁘거나 슬프거나 아름답거나 행복한 장면들로 채워지는 영화를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던 프로젝트를 2달 동안 했는데, 막상 또 생각해보니 그 2달 동안 영화를 제일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떠오르는 제목은 '프렌치 디스패치' '어린 왕자' 'Far From Heaven' 'Thelma & Louise' '블루 재스민' '가장 보통의 연애' 이 정도인 것 같다. 더 봤을 수도 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까 꽤 많이 보긴 했다.  



어쨌든,, 오늘은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친구를 만나서 어김없이 영화 얘기를 했다. 콜미바이욜네임 안 봤다고 하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정말 좋은 영화라며 꼭 보라고 했다. 음악이나 영화에 있어 특정 친구들의 추천은 항상 신뢰하고 잘 따르는 편인데, 우진은 그 특정 친구들 중 탑티어(?)에 속한다. 집에 와서 씻고 작은 조명을 켜놓고 극세사 이불 속에서 바로 옆 협탁에 있는 리스의 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콜미바이욜네임을 틀었다. 사실 별 기대 안하고 봤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건 쫌 안하고 싶어하는 홍대병 기질이 약간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너무 엄청난 신드롬을 몰고 오길래, 괜히 보기 싫어져서 안 보고 있었다. 색감이 어쩌고, 음악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틀었달까 ? 



결과적으로 영화는 정말 정말 좋았다. 아름답게 슬프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가 있다면 이 영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말일 것이다. 어릴 때는 책 읽고 독후감도 많이 쓰고, 파리에 살 때 까지만 해도(그게 벌써 무려 4년 전이다) 전시 보거나 공연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열심히 기록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보고 느낀 걸 언어화 하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엘리오가 타는 장작을 혼자 보면서 우는 마지막 장면이 머리 속에서 잊히지 않는데 왜 그런걸까? 왜 그런 건지 누군가랑 막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막상 하려고 보니까 이런 어딘가 사소하고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내 머리 속에 마구마구 엉켜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볼까 하고 블로그를 켰는데도 전혀 풀어지지 않는다. 우진이 그랬는데, Inner Monologue가 가득 차있어야 그런 장면이 나오는 거라고 했다. 말을 안하고 눈물만 흘리지만 속으로는 독백을 하고 있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엘리오가 마음 속으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을지 생각해서 그런걸까? 그냥 최근에 나한테 있었던 일들이 스쳐가면서 어떻게 엘리오랑 공감대가 잘 이루어진걸까? 둘 다인가? 하 이렇게 머리와 마음이 점점 굳어가는 어른이 되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영화가 슬펐던 것 만큼이나 슬프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나 인상 깊고 슬프고 막 여운이 남는지 콕 집어서 멋지게 글을 쓰고 싶은데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 불어가 많이 나와서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영화에 영어 한국어 말고 다른 언어 나오는 게 이상하게 잘 안 봐졌었는데, 사람이 살다보면 또 이렇게 변하기도 하나보다. 영화 속의 사람들이 불어를 많이 써서 좋았다. 괜히 귀를 더 쫑긋 세우게 되고, 집중도 더 하게 됐다. 80년대 여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내가 요즘 신물이 난 휴대폰도 안나오고(신물이 나지만 손에서 뗄 수 없는 애증의 존재), 연필 사각 거리는 소리, 누군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이런 요즘의 내가 잘 들을 수 없던 소리들이 들리는 것도 좋았다. 여름의 늘어진 모습도 좋았다. 가만히 누워있고, 책 읽고, 악보를 필사하고, 햇빛을 받으면서 풀밭에 누워 자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수영을 하러 가는 장면 장면이 마치 내 삶의 어느 구석에 있는 추억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냥 다시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다시 생각을 한다고 뭐가 정리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끝난지 한시간 반이 되도록 잠도 못자고 자꾸 생각이 나니까 아무래도 또 봐야할 거 같다. 



콜미바이욜네임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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