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아니 정 아니 그 아래 어딘가 쯤
저 이번달 까지 하고 그만 둘게요.
워킹맘에게 이보다 두려운 말이 있을까. (왜 엄마가 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이 글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이모님의 퇴사(?) 선언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가 서운하게 해드린 게 있나, 돈을 올려달라는 소린가, 우리집 아이가 유난인가 기타 등등. 정작 나는 회사에서 관두라고 할까봐 노심초사하는 쩌리 나부랭이인데 서글퍼지는 것은 덤이다.
한 생명이 집에 들어오는 것은 실로 엄청났다. 많은 말은 제쳐두고 당장 혼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생명체가 집에 등장한 것이다. 그 말인 즉슨 부모가 집을 비울경우 대체 인력이 필수라는 뜻이겠지.
보통 사회에서 고용주과 고용인을 갑을 관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모님께 육아를 맡긴다는 것은 단순히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러한 기존 고용의 개념(?)을 벗어나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되는 셈이다. 조상이 덕을 쌓아야, 전생에 착한 일을 해야 이모님을 잘 만난다는 우스갯소리는 겪어보면 그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내 아이와 엄마보다 (시간 상으로) 더 친밀한 존재 아니던가. 본능적으로 엄마를 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하루 종일 부대끼는 사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아이의 세상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한 달에 두어번 만나는 할아버지를 보고서도 한참을 들여다보며 누구지?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제 세상의 전부를 함께 하는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이루 말하지 못할 스트레스일터. (어차피 말은 못하는 구나) 그렇다면 그저 이모님을 모셔야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업무 난이도는 내려가지만 월급인상도 필요하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 아이와 긴 시간 친밀하게 지내준 것에 대한, 로열티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부모 한 쪽이 육아를 담당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지만 맞벌이 부부라면 이모님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당장 이모가 휴가를 내면 둘 중 한 명은 같이 휴가를 내고 아이를 보아야 한다. 갑작스런 결근 통보에도 화는 커녕 아.. 그래서 다음 날은 오실 수 있으세요?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벌이의 숙명이다.
갑을이 바뀌었다-는 식의 상하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달을 품어 세상에 나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말은 커녕 엄마, 아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를 맡아 키워주는 이모를 단순히 고용인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남'과 엮인 회사는 '퇴근'하면 그만이지만 이모님은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같이 지내는 동안에는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내려 놓아야 한다.
문득 회사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회사 상사들도 내가 지금보다 일을 더 했으면 좋겠고 내 월급이 비싸다고 생각하겠지. 내 연차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갑자기 연차를 쓴다고 하면 화가 날까 등등. 나도 월급 더 준다는 회사 있으면 이직을 꿈꾸는데 이모도 돈 더 준다고 하면 내가 잘해준다고 한 들 다른 곳에 가고 싶겠지. 다른 곳은 요즘 얼마를 드리지, 가만 이모님 필요하신 거 없나-로 연결되는 생각들.
"가족같은 남"
이러한 애매모호한 관계. 엄마 입장에서 쓴 글이고 이모님 또한 고충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애 가진 쪽이 을이라고 징징대는 글이 아니다. 사실 이모님은 정녕 고마운 존재를 넘어 생명줄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들다. 내 목숨보다 아낀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제 자식도 하루 종일 보다보면 미칠 것 같다는 게 정설..인데 남의 아이를 종일 본다는 것은 정말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이모님 품으로 기어가는 아이를 보고있자면 가끔 복잡미묘한 마음이 든다. 이모님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는구나-란 감사함과 나보다 이모가 익숙하구나-에서 오는 그런.
부모라는 이유로 그저 육아에 올인할 수도 없고 (물론 할 수도 있다. 그저 존경..) 아이는 키워야 하고 어찌할 수 없는 그 혼돈(?) 속에서
이모님도, 부모들도
그저 모두모두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