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코로나 없어도 코로나의 일상

영유아의 주양육자라는 것. 그것이 자리한 일상

by 달기
친구를 만나 수다 떠는 것,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책을 읽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아무렇지 않던 일상이 갑자기 사라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워 미칠 내 새끼 때문에, 아니 덕분에.




정말이지 몰랐다. 중국에 전염병 같은 게 돈대-라는 말이 나올 때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우리가, 전 세계가 유래 없는 판데믹에 휩싸일 줄이야.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역사책에 2020년이 기록된다면



유래 없는 대재앙의 해, 2020년
코로나라는 역병이 창궐하여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입마개를 하고 다녔고
여름에는 물난리가 났다


고 기록되지 않을까 싶은 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잊었겠지만 올여름 비는 지독하게 많이 왔다)


예전 같은 일상이 그립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기분 탓이 아니다. WHO도 유례없는 정신보건의 위기라며 코로나블루를 공식 질병으로 인정할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마다 강도는 달라도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으로 부작용을 겪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코로나가 우울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 이로 인한 영향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 것은 당연히 알고 있으며 가볍게 말할 부분이 아님을 안다. 어디까지나 글의 맥락에 의거하여 단순히 '거리두기'에 관한 일상만 언급하는 것이므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한다.)


작년 11월 나는 아이를 낳았다. 배 안에 있기에는 크고 세상에 나와 혼자 숨쉬기에는 작았다. 그 자그마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첫 아이를 안은 기쁨 뒤에는 무서움이 밀려왔다. 그 시기 아기는 너무 작고 여려서 쌔근거리며 자는 것도 무서웠고 안고 있어도 실수로 떨어뜨리면 어쩌나 무서웠다. 이런 아이를 데리고 찬 바람 부는 밖으로 나가는 일은 병원 예방접종 말고는 없었다.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거리조차 꽁꽁 싸맨 아이를 차에서 건물 안으로 잽싸게 이동시켰다.



겨울은 길었다. 3월도 날이 차다고 했다. 100일이 된 아이는 처음보다는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작았다. 그 시간 동안 나 역시 집에 있었다. 또 한 달이 흘렀고 4월이 한참 지나서야 가까스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이라는 것을 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집 밖을 구경하는 아이가 얼마나 생경하게 세상을 바라볼까 내가 다 설레었다. 그런데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정말 고작 집 앞에 나가는데 쪽쪽이도 챙기고 가재 수건도 챙기고 기저귀도 챙기고 물티슈도 챙기고 이 자그마한 아이보다 짐가방이 컸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그것만으로 콧바람이 살랑살랑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집 근처를 돌았다. 레벨이 1 상승했다. 도대체 이게 무어라고 기쁜 일인가 싶지만 큰 발전이었다. TV를 보면, SNS 보면 남들은 카페도 잘만 가고 백화점도 가던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가서 기저귀는 어디서 갈아주어야 하나, 똥을 싸면 어떻게 하나, 분유는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려서 나는 나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임신했을 때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가고 싶은 집들을 봐 두었었다. 왜 그렇게 술집이 많던지, 아이를 낳고 나면 꼭 먹어치우고 말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다짐은 지킬 수 없었다. 아니, 그 많던 술집들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배가 남산만 할 때는 내 한 몸 추스르며 뒤뚱뒤뚱 걷기라도 했지만 이건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아이만 낳으면!이라는 헛된 꿈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는 재앙이지만 나는 아이라는 축복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함께 속할 수 있는 사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속상해하고 있을 때 나는 인별에 그 어느 해외여행 사진도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며 기뻤다.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몇 번씩 비행기를 타던 나였기에 인스타를 보며 여행 욕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고민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욕먹을 소리인 걸 알지만 솔직히 조금 그랬다.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코로나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정말로.) 차라리 어릴 때 아기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얘를요? 정말요? 존경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쯤 되니 산후우울증이 출산 후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안 오는 게 비정상이 아닌가 싶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나는 산후우울증에 대해 논할 자격이 별로 없다. 이모님이 오셨고 얼마 되지 않아 출근을 했으니까. 하지만 출근을 하지 않던 그 기간 동안 나는 조금 우울했던 것 같다. 하물며 이럴진대, 오롯이 아이를 키워내는 주 양육자는 내 눈에는 그저 존경스럽게만 보인다. 코로나가 앗아간 일상에 분노하고 힘들어하면서 신생아 주 양육자(대다수의 경우 엄마겠지만)의 우울증은 너무 가볍게 다루어진 것 같다. 내 새끼 보면서 뭐가 힘드냐는 소리는 집어치우자. 그렇게 따지면 직장인은 왜 힘든데. 누가 강제로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먹고살자고 택했지만 욕이 나온다. 내가 각오하고 선택했다고 안 힘든 거 아니고 욕 안 나오는 거 아니다. 어쩔 도리가 없으니 참고 버티는 거지 괜찮은 거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일부를 잃었지만 신생아의 주양육자는 모든 일상을 잃는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예쁜 내 새끼를 보고 견디는 시간들이다. 이 상황에 돈 벌기는 쉬운 줄 아냐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요즘 사회생활 안 해보고 엄마가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진리의 사바사다. 참고로 나는 진정한 산후조리는 출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비록 남의 돈 버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곳에는 사회가 있다. 화나면 술 한 잔 하자고 할 동료도 있고 말이라도 해볼 상사도 있고 기운 내라고 해주는 팀원도 있다. 비록 저 삐리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 가기 싫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언어가 통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속한 사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경험을 해보아야 안다. 이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한 순간에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진 신생아 주 양육자의 일상은 그만큼 관심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신생아를, 굳이 주 양육자를 붙이는 것은 100일까진 모르겠고 6개월만 지나도 주양육자가 사람 꼴은 할 수 있고 주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무게로 괜찮아지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들을 잠깐씩이라도 사회로 돌려보내 주자.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말 한마디가 아니라 노동력의 제공이다.



엄마의, 주 양육자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모른 척하지 말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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