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불리던 감격적인 순간

일 줄 알았는데 역시나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달기
엄마


"어버버버, 으에에에"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아이의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오면 가슴이 뭉클할 것 같았다. 매체에서 보았던, 평생 잊지 못한다는 그 순간이 곧 내게 오겠구나 싶어 설레기도 했다. "엄마"를 먼저 할까 "아빠"를 먼저 할까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이 작은 아이의 입에서 그 무엇이라도 나오면 감격이 벅차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돌을 지난 아기는 "아빠"를 하루에 12번도 더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언제 그 말을 처음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변명을 하자면 언젠가부터 "아부아"를 했고 "빠빠빠"를 하다가 어느 날 "아빠"가 되었는데 이게 뚜렷하지가 않다. 하루 종일 옹알옹알 무어라 말을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라서 기억하기가 어렵다. 사실 지금도 "아빠" 보다는 "아뿌아"에 가깝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음을 알지만 나는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다)



아이가 "엄무아?" "아뿌아?" (아이는 늘 끝이 올라간다. 이모도 이런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했다.)를 하고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 대상이 나나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아이가 할 줄 아는 단어가 "아뿌아"일뿐 그게 '아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 놀다가 갑자기 "아뿌아?" 핸드폰을 보고도 "아뿌아?" 이러다 보니 감격이 좀 떨어지는 것이라고 괜히 아이 탓을 해본다.. 아이가 말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나를 바라보며 "엄마"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터지지만 심지어 아이를 낳고 나서도 적어도 나를 향해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를 수십 번도 더 한 지금 아이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엄무아?
아뿌아?

나의 상상처럼 뭉클하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아이의 저 말을 들으면 가슴에 닿는다. (물론 나중에는 귀에서 피가 나서 부르면 무섭다고 하더라) 참 신기한 일이다. 나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모와 함께 있는다. 우리는 이모를 "이모"라고 부르고, 이모는 아이에게 자신을 "할머니"라고 한다. 아이는 졸리고 배고프면 나보다 이모를 먼저 찾는다. 생후 50일쯤부터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준 이모가 이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리라. 이 아이가 이모를 엄마라고 알지 않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아이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모>나> 아빠의 순서로 의지하는 것 같다. 농담처럼 이모는 밥 주고 재워주고 필요한 거 해주는 사람, 엄마는 놀아주는 사람, 아빠는 태워주는 사람(11킬로에 육박하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마도 태워주고 비행기를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으로 알지 않을까 셋이 이야기하곤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엄마"와 "아빠"는 할 줄 알지만 "이모"는 여전히 하지 못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아이가 태어나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이름을 부르면 저를 부르는 것인지 아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이름은 말하지 못한다. 돌을 앞두고 한참이나 바빴던 아빠는 두어 달이 넘도록 주말에도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아이의 입에서는 "아빠"가 가장 많이 나온다. "엄마"나 "아빠" 중 한쪽을 많이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 아가는 "아빠"가 쉬운가 보다.

가장 많이 듣는 단어를 말한다고 하던데 하루에 수십 번씩 "아뿌아"를 하는 아가. "엄무아"는 잘 안 하고 "아뿌아"를 하는 아가. 물론 지구 상 대부분의 언어들이 "엄마", "아빠"를 뜻하는 단어가 아가가 발음하기 쉬워 말하는 첫 단어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제치도록 하자. 어부부부 소리를 내며 실컷 놀다가 "엄무아?", "아뿌아?"를 하는 아가의 목소리를 조금 더 즐겨보련다.

요즘은 가끔 "가가"인지 "까까"인지도 하고 얼떨결에 몇 단어를 더 발음하고는 한다. 놀라서 쳐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괴성을 지른다. 재택근무로 회의를 하다 건너편에서 익룡이 사냐는 질문에 웃프게 대답했다. 방문을 꼭꼭 닫았음에도 아가의 목소리는 이어폰을 뚫고 울릴 정도로 컸으니까.


오래도록 "엄무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위인은 못되므로 내가 언제 그랬어! 엄마 그만 찾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마음으로는 그러하다. 그리고 "엄무아"를 했을 때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있어주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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