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두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결혼식인지 생일잔치인지 모를 뻑적지근한 돌잔치를 한 지 벌써 1년이 지나 아이의 생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돌치레나 열감기 한 번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생일에 나 아무것도 안 할 건데."
실제로 그랬다. 올해가 생일상도 안 차리고 선물을 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일일 것이 거의 확실하기에 올해만큼은 최대한 간소화! 가 목표였다. 매년 특별한 생일 케이크를 해주리라 마음먹었기에 케이크 주문을 넣은 것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10살까지는 수수팥떡을 해야 한다는 말에 부랴부랴 수수팥떡 조금, 하는 김에 백설기도 조금, 꿀떡도 조금 들어 간 떡 세트를 주문한 게 전부다.
하루 앞당겨 아이의 생일 파티를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장식된 케이크를 꺼내는 순간 내가 더 떨렸다. 과연 케이크에 이 돈을 쓰는 것이 맞는지 고민했지만 과감히 지른 이유는 먼 훗날 아이의 생일에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주었다고 믿고 싶은 내 욕심이니까. 관심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이가 (잠시나마) "우와아!!"라고 해주었다. 그 찰나를 위한 케이크니까 역할은 다 했다. 이후로도 제법 모형을 가지고 놀다가 버렸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너무 빨리 커서 아쉬워."
이런 세상에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있나 했는데 그 말을 내가 실감할 줄은 몰랐다. 나에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1년이 이 아이에게는 세상에 태어난 절반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아가는 꼬물거리는 생명체에서 에너지 넘치는 아가가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24개월의 체력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고작 태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서 어른 둘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의 무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더 무서운 건 앞으로 이 아이의 에너지는 올라갈 일만 남았고 내 에너지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한 때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여리고 작은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안기조차 무서웠던 아가는 들어 올리기 버거운 15kg의 남아가 되어 나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질 줄도 안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기만 하면 바랄 것이 없다던 아이에게 안 돼! 그만! 을 수없이 반복하고 어지러 놓은 장난감을 주워 담는 것이 일상이다. 왜 우는지 몰라 답답했던 신생아 때와 달리 여전히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기가 막히게 필요한 것은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시다바리가 된 건 덤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데 말을 하고 있는 묘한 의사 표현의 단계다. 말이 늦은 탓에 더 귀여워 보이는 장점(?)도 있다. 꼬물거리는 생명체에서 사람이 되면 덜 귀여울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다른 귀여움의 생명체다. 그럴 때마다 중얼거려본다.
"넌 귀여워서 살아남았다."
제 생일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와와(우유)병을 물고 뒹굴거리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잠이 들기 싫은지 뒹굴 하다 한참만에 잠이 드는 것으로 생일날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보들보들한 복숭아보다 여리한 솜털, 만화에서 본 것만 같이 오동통하게 솟아오른 볼, 이젠 마주치면 제법 소리가 날만큼 자란 손, 볼록 나온 배, 조물조물하고픈 엉덩이, 올록볼록 허벅지, 신기하게도 늘 뽀송한 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어느 구석 하나 입을 맞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수 없는 나의 아이.
불 꺼진 방, 잠든 아이 옆에 누워 한참을 바라보다 눈이 아렸다. 언제 이만치 자랐을까. 아가 냄새는 그리움 저 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유난히 튼실한 허벅지와 큰 머리둘레를 자랑하는 아가가 되었다. 내 손에 들린 꼬깔콘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인 것처럼 활짝 웃어주는 아이, 꼭 엄마 손을 잡고 미끄럼틀을 타러 가겠다며 기껏 앉은 나를 일으키는 아이, 엄마가 저를 서럽게 했다며 세상 통곡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라며 달려와 안기는 아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이 시리도록 사랑스러운 아이,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게 해 준 아이.
육아는 녹록지 않다. 가끔은 너무나 어렵고 감당하기도 버겁다. 앞으로의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들을 부여잡고 싶은 것이 많은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인 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아이러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 모습들이 그리운 날 이 날의 기억을 꺼내면 한 없이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다. 가끔 아이의 지난 모습들을 보면 이럴 때가 있었나 싶다. 그 모습들을 아직 찾지 않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보다 아직은 아가와 새롭게 쌓아가는 순간들이 더 각인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귀여울 거야?라고 묻는 것은 언제까지 나를 너의 삶의 중심에 놓아줄 것이냐 묻는 나의 앞선 아쉬움이다.
언젠가 온전히 너의 삶을 살아내는 날, 그 곁에서, 아니 조금 멀리서 늘 너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문뜩 떠올려주기를.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를.